소리가 무서워
소리의 민감성에 대한 생각을 한참이나 했다.
그리고 엄마와 동생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 원인은 어렸을 때 들었던 아빠의 고함소리.
아빠는 자상한 편에 속했지만
성격이 불같았다.
난 그런 아빠가 너무 싫었고, 무서웠다.
자기 성질대로 안되면 버럭 큰소리를 내며 화를 내기도 했고,
아빠가 화났을 때 보내는 눈빛은 성난 사자 같았다.
동생과 나는 아빠의 큰소리에 민감해졌다.
아빠의 목소리가 커지면 숨죽였고,
아빠가 호통을 치면 주눅 들었다.
아빠가 아팠을 때는 더 심했다.
정말 정신병자처럼 소리 질렀다.
그 소리엔 엄마도 덩달아 소리 질렀고
그 어릴 적 트라우마는
엄마에게, 그리고 동생과 나에게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는 병을 만들었다.
지금의 아빠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있지만
그때의 아빠를 귀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내 어린 시절이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더 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자랐을까?
싸워야 할 때 큰소리를 내며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됐을지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 정신 교통사고의 후유증은 시간이 지나도 자연적으로 낫지 않는 불치병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성장한 나는 남자친구들과 다툴일이 생기면 화난 목소리가 듣기 싫어 헤어지는 쪽을 선택했고,
차분해진 목소리의 사과에 다시 마음이 녹았던 쪽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이별이란 건 생각하지 않는 결혼을 한상태.
남편과의 다툼이 없을 수는 없다.
남편은 몰랐겠지만 남편이 내게든, 타인에게든 큰소리를 낼 때 심한 날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날은 남편의 목소리에 소름이 끼치기까지 했다.
매장에선 귀에 꼽혀있던 인이어를 빼버렸지만 둘만의 다툼에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엄마도, 동생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아빠의 큰 목소리가 버겁다는 말.
음악도 잘 듣지 않는다는 동생의 말.
하지만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스트레스를 풀러 노래방을 찾는다.
토해내듯 열창하는 내 소리에 가슴이 뻥뚤린다.
듣기 싫은 것과, 소리 내고 싶은 게 어쩌면 같은 것일까?
나도 소리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내 화를 소리 내서 쏟아내고 싶었던 건 정말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