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래서 저는 어떤 상태인가요?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요?

by 세하

나는 여태 한 번도 친구들과 술 먹고 싸워본 적이 없다.

블랙아웃이 되었던 날은 많았지만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믿기지 않았고 믿을 수 없었다.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앞뒤가 너무 맞는 내 몸상태, 그리고 그의 표정.

나는 나를 알고 싶었다.

내가 진짜 누구인지.

나는 진짜 가면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도 모르는 내가 정말 존재하는 걸까?


그날 이후로 나는 한순간도 그날의 대화를 잊어본 적 없었다.

한 달 내내 나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그렇게 나는 그날에 갇혀버린 채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내 말을 한 번도 끊지 않았다.

그리고 이해한다는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그 표정마저도 이해할 수 없었다.


"환자분의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정말 죽이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어떻게 저런 온화한 표정으로 그 행동에 대해 저렇게 말을 할 수 있지?

내가 예상한 답과는 너무도 달랐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계속 참아내는 방법을 선택한 나의 결과라고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일어날 사고 같은 거라고 덧붙였다.


"큰 소리를 내서 화내본 적 있으세요?

본인의 감정에 솔직하다고 생각하신가요?"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하다고 생각하며 뱉은 말들이 많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사의 질문에는 아니오라는 답이 나왔다.


그랬다.

나는 한 번도 내 감정에 있어서는 솔직한 적이 없었다.

사회가 만든, 내 자리가 만든 이성적인 솔직함이었을 뿐 감정문제에 있어서는 늘 입을 꼭 다물었다.


"제가 이혼을 왜 얘기했을까요? 맨 정신엔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단어였어요. 그리고 저는 지금 충분히 남편에게 만족해요."


"두려움의 일종입니다. 배신감에 대한 두려움이 회피형으로 비친 것 같습니다. 버려지기 전에 먼저 버려야 한다는 자기 보호 같은 것일 수도 있겠네요."


말문이 막혔다.

사실 그랬다. 나는 처음 남편의 외도사건을 겪은 이후로 두려웠다.

나는 모든 걸 용서하고 남편을 다시 믿기로 했지만 끝내 날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작은 유리파편처럼 남아서 나를 찌르고 있었다.


의사의 말을 듣던 나의 다물어진 마음 안에서 문을 두르리며 소리 냈다.

'네가 많이 사랑해서 그래, 알잖아 네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저는 제가 아니라, 남편을 위해 여기에 왔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제가 어떤 상태인가요?"


나는 강한 로봇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로봇의 다리가 부러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다리를 먼저 고쳐야 한다고, 사라지지 않고 박혀있는 불안이라는 유리조각을 빼내면

다리가 고쳐질 거라고.

그리고 다리가 고쳐 지면 걷는 연습을 하자고 그렇게 말했다.


"가능한 거죠?"

"환자분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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