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두알의 힘

뭐가 그렇게 창피한거라고,

by 세하

정신병원이라고 칭하기도 하는 정신건강의학과.

그동안 몇 명의 직원이 병원을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다녔었거나, 혹은 현재 진행 중인 경우였다.

보편적으로 그들의 성격은 소심에 가까웠고,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정신력이 약해서라고 폄하했다.


나는 그들과 좀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힘들어도 혼자서 잘 견뎌내는 사람.

소심보다는 대범에 가깝고

마인드 컨트롤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곤 이내 내가 왜 짜증이 났지?

내가 왜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들이 빈번해졌다.


나는 나를 바로잡기 위해 마음속으로 계속 돼 내었다.

너답지 않게 왜 이래.

이런 태도는 좋지 않아. 별일도 아닌데 왜 그래?

내 두 개의 자아 중 하나는 그렇게 내게 채찍질하고 있었다.


잠을 청하려 TV를 끄면 밀려오는 후회.

그리곤 새벽 늦게까지 잠이 들지 않았고

잠이 들어도 두 시간에 한 번꼴로 깨어 10년 전 20년 전 캐캐묵은 과거들을 떠올리며 후회하는 순간들을 되돌리려고 애썼다.


그때 내가 그랬다면 어땠을까?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런 생각들로 한 시간을 때우다 다시 잠이 들면

또다시 두 시간 뒤에 깨어났다.

그렇게 나의 밤은 달라지지 않을 현실을 내일로 두고

과거를 바꾸기 위해 애썼다.


그런 내게 의사에게 받은 알약 두 알은 희망 같았다.

"불안감을 내려주는 약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잠을 좀 잘 수 있을 거예요."


일주일 동안 약의 반응을 지켜보기로 하고 나는 나의 변화에 집중했다.

취침 전 한 시간 약을 먹은 뒤 침대에 누워 약의 변화를 기대했다.

사실 나는 약을 먹자마자 몽롱해진다거나 나른해지는 기분을 상상했는데 생각보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뭐야. 이거 그냥 다른 사람들은 placebo 효과 아니야?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나는 남편에게 이상하다고 병원의 효과에 대해 빈정댔다.


"첫날이니까 지켜보자. 효과가 아예 없진 않을 거야."

남편은 언제나 그랬듯 내게 아기달래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했다.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당신이 좀 잘 잤으면 좋겠어서."


나는 잠을 못 자면 숨이 잘 안 쉬어지는 이상한 증상이 있다.

하루 종일 숨을 헐떡거리는데 그럴 때면 예민해지고 기운이 쭉 빠져서 도통 무언가에 집중할 수 없고

금방한일도 까먹은 채 내가 지금 뭘 하려고 하는지도 잊어버린다.


내심 기대했다.

TV를 보는 남편을 등 뒤로 돌리고 폭신한 베개를 다리사이에 끼운 뒤 눈을 감아보았다.

그리곤 언제 그랬냐는 듯 잠이 들었다.


두 시간에 한 번씩 깨어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알람시간보다 1시간 먼저 눈이 떠지곤 몽롱했다.

잠을 깼지만 깬 것 같지 않은 기분.

기운이 없었다. 그리고 어떤 기분도 들지 않았다.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일어나기 싫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그렇다고 일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닌 그냥 감정이 없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남편에게 설명할 길이 없는 없었다.

"여보. 나 기분이 없어. 무야, 그냥 없을 無."

남편은 그게 뭐냐고 물으면서도 한편으론

그게 낫겠다고 얘기했다.


피곤했다.

잠은 잘 잤지만 피로감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그래도 중간에 깨지 않고 잠들었었단 사실은 나를 충분히 만족시켰다.


이렇게 간단한걸,

두 알이면 해결될 일인데,

정신건강의학과에 발을 들인다는 것이

왜 창피한 일이라 생각했던 걸까.

조금 더 빨랐으면 좋았겠다는 후회를 또 다시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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