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지나쳤던 익숙한 것에 대하여
사실 글씨와 인성 간의 직접적 상관관계에 대해선 여태껏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오히려 아예 무관하다고 치부해도 될 정도다. 내 주변에도 글씨는 잘 쓰지만 성격이 더럽거나, 눈살 찌푸려지는 악필을 가졌어도 넓은 이해심과 바른 마음을 가진 반례가 심심찮게 있었으니깐. 심지어 조선 시대 최악의 혼군으로 손꼽히는 인조의 친필은 당대의 사대부들과 명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명필이었다. 글씨만으로 인성을 평가할 수 없다는 건 이렇게나 증명하기 쉬운 비상식이자 편견인 것이다.
조선 최악의 임금이라 불렸던 인조도 글씨 하나만큼은 명필이었다. 조선 왕가들 대대로 내려오는 "금수저성" 특징이기도 하지만.
https://boris-satsol.tistory.com/1097
그러나 대부분의 이들이 어떤 식으로든지 바른 글씨에 바른 마음이 깃드는 법이라며, 쉽게 서체 구사력을 인성의 척도로 삼는 오류를 저지른다. 하지만 난, 이것이 과학적으로 따지고 들면 터무니없다는 걸 금방 깨달을 수 있을 다수의 사람들이 굳이 진지하게 '진짜'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이면에 더 큰 의미의 상징성을 가진 비유적이고 관용적인 표현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와 같은 '말 한마디'의 지위랄까. 저게 진짜로 말 그대로 "한 어절"을 뜻하는 것이라고만 믿는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바른 글씨'에서의 '글씨', 즉 문자란, 단순한 언어의 표기 수단에 지나지 않은 도구로서가 아니라, 그것이 표기하는 언어가 상징하는 인간성과 문명을 대표하는 존재로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으리라, 난 그렇게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그런 예가 참 많다. '음성 언어'와 '표기 문자'로서의 정체성이 현격히 다른 '한국어'와 '한글'을 그냥 자꾸 '한글'로만 뭉뚱그려 말해버린다든가, 따지고 보면 글자 시스템 하나 새로 반포된 날일 뿐인 한글날을 법정 공휴일로 두고 매년마다 거창하게 기념한다든가, [뿌리 깊은 나무]와 같은 드라마에서 묘사되었듯 문자 창제 하나를 두고 사회 전체의 지식 기반과 질서 체계가 흔들리니 저쩌니 하는 큰 파장이 일어나는 것이 이런 맥락에서 일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 드라마 내내 세종대왕 이도와 밀본의 수장 정기준은 문자 반포를 두고 갈등을 계속하면서 주제의식을 이어나가고 긴장감을 더한다. 백성들에겐 우리의 글자가 필요하다며 어떻게든 훈민정음 반포를 강행하려 하는 이도, 역병 같은 문자가 백성들을 병들게 하고 사대부를 무너뜨릴 거라며 필사적으로 막아서는 정기준. 나온 지 꽤 됐지만 개인적으로 다시 봐도 좋을 명작이라 생각한다.
https://programs.sbs.co.kr/drama/rootedtree/clip/53710/22000183839
그리하여 궁금해졌다. 대체 그 글자 하나가 뭐길래, 서체 하나 제대로 잘 쓰고 못 쓰고 하는 게 무려 인성의 기준이 될 정도로, 글의 부속으로서가 아닌 "글"이 되기 이전에 가지는 "글자" 그 자체의 의미는 도대체 우리네에게 어떤 것일지에 대해서.
글자에 대해서 논하려면 크게 보편성과 특수성, 두 영역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겠다. "글자"라는 것이면 으레 다 가진 특성일 보편성과, 유독 "한글" 내지는 "한자"로서 가질, 다른 문자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특수성으로 말이다. 일단 보편적인 측면에서 문자는 음성 언어를 일정한 규칙으로 시각적으로 도식화한 체계고, 기능도 의의도 딱 거기까지다. 물론 문자마다의 시스템과 그 문자가 표기할 해당 음성 언어의 시스템이 제각각 천차만별이지만, 본질적으로 소리를 나타내는 게 목적이라는 건 같다. 한자는 "표의 문자"이니 예외이지 않느냐 반문할 수 있는데, 사실 한자는 표의 문자가 아니다. "표어 문자"이다. 한자는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뜻도 있지만 그걸 읽어야 하는 발음 역시 함께 정해 지시하고 있다. 본질적으로는 한자도 중국어의 '읽는' 법을 표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고, 그 형성 원리를 음성 언어의 원 대상을 본뜬 '의미'에서 가져왔을 뿐 여느 다른 문자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여담으로 진짜 의미만 표현하는 "표의 문자"는, 화장실 가면 볼 수 있는 사람 모양 픽토그램이나 아라비아 숫자 같은 것들이다. 그것들에는 발음이 없다. 각각 언어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읽히고, 다만 시사하는 의미만 동일할 뿐이다.
이것들에는 발음이 없다. 의미만 있을 뿐. 사실 이런 게 진정한 "표의 문자"다.
https://blogs.adobe.com/creativedialogue/ko/design-ko/pictogram-using-illustrator/
이처럼 문자로서의 보편적 특성만 놓고 보자면, 딱히 그리 크게 주목할 만한 점은 없어 보인다. 이 대목에서 글자는 아직까지도 스스로 아무 가치를 지니지 않은 도구의 영역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러면 해답은? 바로 특수성이다. 유독 우리네의 문자가 '한글'내지 '한자'라 이런 특징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애초에 이 쪽에서 답이 나왔어야 한다. 서양에서의 "캘리그래피"와 동양에서의 "서예"가 그 행위 자체에서부터 시사하는 의미가 서로 다르고, 문자를 쓰는 도구인 펜과 붓에서부터 다른 특징을 보이며, 특히나 우리가 공휴일까지 만들어가며 다른 문화권 내지 국가들과는 달리 우리네 문자인 한글에 이토록 큰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것도 이 점에 있다. 더 콕 집어 얘기하자면, 앞의 두 개 '서예'와 '붓'은 한자, 뒤의 한글날은 당연하지만 한글과 관계가 있다.
한글, 정확히는, 생겨나던 당시 명칭인 "훈민정음"이 존재하기 전 수천 년 동안 우리 사회의 유일한 문자는 한자였다. 당시 "문자"라는 말은 한자 그 자체를 의미하는 말로서까지 받아들여졌다. 중·근세 이전까지 중국은 정치·사회·경제 모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던 최첨단 문명 보유 사회였고,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던 우리는 그들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점을 이용해 그들을 모방하고 종종 그들의 수준을 따라잡았다. 그렇게 모방해 온 당시의 최첨단 아이템 중 하나가 다름 아닌 한자였다. 세계적으로 문자라는 개념이 이제 막 생겨날 무렵인 고대에 이 물건은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생각한 것들의 내용과 의미가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어딘가에 남겨져 누군가에게 전해질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대단한가. 이걸로 역사를 쓰고, 국가를 세우고, 백성을 다스렸다. 수천 년 동안 한자는 우리에게 지식이요, 문명이요, 권력이요, 신성성이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권력', '신성성'. 일단 한자는 '외국 물건'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가 없었고, 완벽한 현지화에 실패했다. 우리 사회, 우리네 삶에 깊게 자리잡지 못했다. 구조적으로 중국어의 음을 따 온 데다 뜻마다 자형이 모두 달라 수천수만 개씩 외워야 하는 한자는 읽고 쓰기에도 난해하기 그지없었다. 이렇다 보니 자연히 한자는 문자로서의 그 자체가 신성화되어 갔다. 아무나 함부로 다루고 접근할 수 없는, 오직 오랜 기간 고등교육을 받은 사회의 상류층─귀족·사대부만 취급할 수 있는 사치품이 되어갔다. 본질적인 기능은 같더라도 몇만 원 하는 에코백과 수백만 원 호가하는 명품백의 취급이 결코 같을 수 없듯, 한자도 그런 식으로 비싼 물건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글자를 쓰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고상한 것' 취급을 받았고, 글자를 잘 쓰거나 잘 쓰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행위 자체마저 상류층의 전유물인 고등 교육의 일부나 인문학적 소양의 척도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관습이 오늘날까지 관성으로 굳어져, 서두에 얘기했듯 서체와 인성을 연관 짓는 행위의 의식 기반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더 나아가 표어문자라는 한자의 형성 원리 특성 탓에, 글자의 부속을 뜯어 가며 재해석하는 파자 놀이를 한다든가, 한 글자 자체를 철학적 의미를 내포한 그림으로서 취급한다든가 하는 "격조 높은" 파생형 응용까지 가능했다. 이런 것들이 한자 문해의 진입 장벽을 더욱 높였다. 또 글자를 쓰는 수단과 그림을 그리는 수단이 펜과 붓으로 이원화되어 있던 서양의 로마자와 달리 동양의 한자가 붓으로 주로 쓰인 것이 이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한자는 그 하나하나가 로마자와 달리 '선'이 아닌 '면'으로 인식되는 일종의 그림이나 다름없었다. 서양화를 그릴 때 맞춰야 하는 캔버스·팔레트 등등의 세팅이 있듯, 한자를 쓰려면 흔히 "문방사우"라 불리는 세팅을 갖추어야 했다는 것이 묘한 공통점이다.
뭐 이런 식으로 놀고들 있었다.
저 중 하나라도 빠지면 한자 쓰기는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간편화 한 휴대용 키트 같은 것이 있긴 하였으나, 그 역시 저 형식의 축소에 불과했다. 번거로워서 어찌 썼을꼬. 이러니 제대로 보급이 안 되고 진입 장벽이 높아질 따름일 수밖에.
이처럼 한자는 과거 오랫동안 우리 문명의 알파이자 오메가였으나, 소수의 특권을 위한 사치품으로서만 대개 존재하였다.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 백성들은 문명의 이기를 누리지 못하였고, 신분 위계가 철저했던 당시 사회의 질서에 짓눌려 빛을 보지 못했다. 이 속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한 천재가 있었다. 시대를 앞서간 자유주의자이자 인본주의자. 단순한 문자를 넘어 "문명 프리미엄" 그 자체였던 한자에 배짱 좋게 빅엿을 날리며 "글자를 글자답게"란 발칙한 모토로 전혀 다른 시스템을 창조한 사람. 이 땅에선 적어도 모르는 이가 없는 조선의 4번째 임금, 세종대왕의 등장이었다.
빛이요 생명이요 소망이니
http://picdeer.com/tag/%EA%B4%91%ED%99%94%EB%AC%B8%EC%84%B8%EC%A2%85%EB%8C%80%EC%99%95
우리 사회의 언어, 한국어의 체계는 사실상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이전과 이후로 극명히 나눠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자의 도입이 마치 최초의 전화기 발명과 같은 1차 혁명이라면, 훈민정음 창제는 "전화의 재발명"이라 불리곤 했던 애플의 첫 아이폰 출시와 비견될 만한 2차 혁명이었다. 단순히 다른 종류의 글자를 만든 것에 그치지 않는, 문자 자체의 개념·기존 체계의 권력관계와 신성성을 한 번에 뒤틀어 놓는 대격변이었다. 아이폰이 오늘날 우리네 휴대전화에 끼친 전반적인 영향 그 이상의 의의가 있다.
한자와 달리 말을 온전히 쓸 수 있는 표음 문자에, 스무 개 남짓한 자모만 익히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간편성에다, 세종의 천재적인 제자 원리 아이디어까지 더해져 합리성·과학성까지 더해진 이 압도적인 글자는 오늘날 한 때 문명이자 "문자" 그 자체였던 한자를 이 땅에서 완전히 대체해버리고 과거 한자가 누렸던 그 이상의 지위를 독점하고 있다. 단순히 한자가 하지 못했던 한국어라는 음성 언어의 완전한 표기에 그치지 않고, 비문명의 영역이었던 비언어적 소리까지 의태어·의성어를 써서 묘사하거나 미묘한 감정과 억양까지 나타낼 수 있을 지경에까지 이르러 우리 문명의 범위를 넓혀다. 한글이 만들어진 이후로, 상류층 소수자의 전유물이었던 문명은 비로소 모두의 것이 될 수 있었고 말로는 존재하나 글로서는 제대로 존재할 수 없었던 한국어의 말글이 비로소 하나로 온전히 합쳐질 수 있었다. 종종 한국어가 표기 수단인 "한글"의 이름으로 대체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가 아닐까 싶다. 초기 한자의 지위가 단순한 문자가 아닌 문명 시스템 자체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듯, 한글 역시 단순한 한국어의 표기 수단으로써가 아닌 한국어의 정체성 그 자체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여기에 한글 스스로가 가진 압도적인 독창성에다, 한 때 외부 세력에 의해 말살당한 위기를 겪은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반작용이 더해져, 우리는 오늘날 매년 10월 9일에 자신들 글자의 생일을 기념하는 유일한 사회의 일원이 된 것이다. 한글이 가져다준 우리 문명에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생각하면, 나아가 한글의 존재 자체가 하마 타면 사라질 뻔했던 우리의 정체성의 상징으로서 기능하며 주변과 뚜렷이 구분 지어준다는 걸 생각하면 국경일로 지정하고도 남는다.
"문방사우"가 필요했던 한자와, 나뭇가지만 있으면 땅바닥에 끄적거릴 수 있게 기하학적 형태로 디자인된 한글. 두 문자는 이토록 달랐다. 사진은 [뿌리 깊은 나무]의 엔딩 장면. 일부러 이런 특징을 부각하기 위해 저런 장면으로 끝을 맺었다.
https://theqoo.net/dyb/324496572
다시 손글씨로 되돌아와 본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난 손글씨와 꽤나 밀접한 애증의 관계였다. 그때 꽤 심각한 악필이었던 나는 계속해서 "인성 교육"의 일환으로 손글씨 교정을 지속적으로 받아왔고, 부모님에게 자필 일기 쓰기를 거의 반강제적으로 권고받기도 했다. 그때 남은 손글씨 쓰기에 대한 관성과 일종의 '미운 정' 때문인지, 지금의 난 글씨를 쓰라는 주변으로부터의 강요가 거의 없어지고 난 이후에도 글씨 쓰기를 즐긴다. "글씨"만을 위해 그럴듯한 문장을 구태여 만들어 내 끼워 맞추거나 별 의미 없이 유명한 구절을 필사하는 경우마저 왕왕 있을 정도였다.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첫 브런치 글에서도 말했듯,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내 생각을, 내 흔적을 어딘가에 남겨 보존시켜 둘 수 있다는 그 느낌이 참 좋았으니까. 글자에 대한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며 이 글을 적기 전부터, 이미 난 그동안의 경험으로 그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내면화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오늘도, 난 또다시 끄적인다. 다만 이제부턴 나만의 역사가 아닌, 이 글자에 담긴 수많은 역사를 함께 생각하며.
이 글은 이 책에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어쩌면 이 글은 이 책의 서문 정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문자나 언어학에 관심이 많다면 꼭 읽어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