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슬픈 가능성을 상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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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누군가에게 끝내 읽히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그래도 이렇게나마 절 발견해 주고 외로이 버려두지 않아 정말 고맙습니다. 함께 살아 이 지긋지긋한 전쟁의 비극을 끝장내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여정에 힘을 보탰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끝끝내 그러지 못하고 이런 싸늘한 모습으로 과거에 멈춰 당신을 가슴 아프게 해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한 때 전 늘 방황하고 확신이 없던 무기력한 청년이었습니다. 남들 다 하는 대로 학창 시절 보내고, 공부하고, 어느덧 대학생이 되어 이젠 앞으로 뭐 하며 먹고살아야 하나 하며 막막하기 그지없던 고민을 시작해 볼 찰나 영장이 오더군요. 차라리 다행이려나 하고, 다소 씁쓸한 마음으로 현실에서 도망치듯 입대했었습니다. 그저 적응하고 살아가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타성에 젖어, 또 한편으로는 하나하나가 통제받는 군대 생활에 답답함을 느끼고 언제 전역하나 하며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그렇게 살아 있지만, 진정 살아 있진 않은 듯한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남아 있을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전 오히려 그저 각박하고 답답하다고만 생각했던 군생활에서 나름 많은 것을 배우고 꿈을 찾아갔습니다. 바깥에 있었더라면 학교 다니느라, 알바하느라, 친구들이랑 노느라, 핸드폰 보느라 한 달에 한 권 읽을까 말까 했을 책도 수십 권씩 읽으면서 좁았던 식견을 넓혔습니다. 실내에만 틀어박혀 있느라 생전 하지 않았던 운동이나 작업을 여러분들과 땀 흘려 함께 하면서, 하루의 보람과 뿌듯함도 진심으로 여러 번 깊이 느꼈습니다. 제각기 다른 곳에서 이곳에 와 각자의 고충을 안고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을 보며, 언젠가는 이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작가 겸 심리치료사가 되겠다는 꿈도 함께 키워갔습니다.
그렇게 전역을 70여 일 남겨두고, 예기치 않은 오늘을 맞았습니다.
기껏 이제서나마 꿈을 찾아나가던 한 삶이 이토록 허무하게 멈춰 섰는가, 그리 생각하면서 슬퍼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슬퍼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언제나 방황하던 제가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품었던, 누군가에게 진정 도움이 되고 싶다는 그 꿈을 빨리 이뤄낸 것에 불과하니깐. 살아 있지만 진정 살아가지 못했던 제 삶은, 비로소 꿈을 이룬 뿌듯함으로 모두네의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깐.
함께 있어 주지 못해 거듭 미안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지킬 수 있어 마지막까지 행복했습니다.
부디 모두 제 몫까지 행복하게 살아가 주길. 꼭 살아남아 주길.
친애하는 전우들에게,
17-73XXXXXX, 조XX.
이번 주 부대에서 실시하는 집중정신교육 시간에 있었던 "전우에게 쓰는 편지" 활동 중 적어 본 가상 유언장을 옮겨 적어 보았다.
훗날 이런 식의 유언이 누군가에게 읽힐 확률은 굉장히 희박할 것이다. 69년 전과 같은 전면전이 어지간해선 펼쳐지지도 않을 것이며,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 해도 핵전쟁이 되어 이런 것 하나 건지지 못하게 나의 모든 흔적이 이미 사라져 있을 테니깐.
하지만 여전히, 일말의 가능성조차 사라진 건 아니다.
그래서 슬프다. 이젠 잊혀졌으나, 또한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