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이른 퇴근을 하던 날, 집에 들어가면 반갑게 달려올 아이의 모습을 기대했던 탓인가? 친구들과 놀다 8시가 넘어 들어온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일찍 와 봤자, 집에 아무도 없단 말이야!’
가장 우려했던 대답이다. 맞벌이에 외동아들, 방과 후 집에 혼자 있는 아이에겐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동생이라도 있었으면 덜 외로울까 하여 아내와 의논도 하였지만, 결론은 항상 하나라도 제대로 키우자는 말로 끝나곤 했다. 가끔씩은 동생은 첫째의 외로움을 달래는 용도로 태어나서는 안 되다는 합리화도 하면서 말이다.
‘그럼 아빠가 강아지라도 사주면 집에 일찍 들어올 거야?’
상황을 모면하려는 나의 의도였겠지만, 어느 순간 무심결에 내뱉은 말은 책임져야 할 약속이 되고 말았다.
평소 강아지 분양에 대해서는 공장식 사육, 사기분양과 같이 부정적 생각만이 있었다. 그런 일을 피하기 위해 나름 신중을 기해 한 분양 매장을 선택했다. 홈페이지에 보이는 분양 공간도 깨끗해 보였고 분양 후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후기글의 내용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방문하기 전날, 미리 매장에 전화를 걸었다. 강아지를 분양받고 싶다고 하자, 직원은 어떤 품종의 강아지를 원하는지 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강아지 분양의 조건은 최소 30만 원에서 최대 50만 원, 그리고 털이 빠지지 않아야 하는 품종이었다.
(이렇게 잘못된 기준과 동기를 가지고 강아지를 키우게 된 내가 반려견에 대한 글을 쓸 자격이 있는 가 생각도 들지만, 이 글은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미리 알려준다는 의미도 있다.)
매장에서는 요즘 제일 인기 있는 품종으로 방송 '삼시 세 끼'에 이서진 씨와 함께 나와 인기가 높아진 '장모 치와와'라는 품종이라고 했다. 이 품종은 암컷 기준으로 백만 원이 넘는다고 했다. 나는 내일 방문 시 아이가 원하는 강아지가 너무 고가이면 이미 분양된 것이라고 말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다음날, 아이와 함께 펫 샵으로 갔다. 어제 전화한 사람이라고 하자 직원이 아는 체를 한다.
아이가 유리장 두 번째 칸 가운데에서, 찢어진 신문지를 물고 흔드는 하얀색 강아지를 가리켰다.
아이가 직원이 꺼내 준 강아지를 안고 쓰다듬는다.
내 눈치를 본 직원은 '마르티즈'가 순하고 키우기 좋아 분양받은 사람이 많다고 하며 가격도 30만 원으로 저렴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아직 너무 어려서 아플 수도 있으니 2주 뒤에나 데려갈 수 있다고 했다.
아이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아이에겐 지금 당장 집으로 안고 갈 수 있는 강아지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 당장 데려갈 수 있는 강아지를 보여 달라고 하니, 직원은 유리장 맨 밑 구석에서 자고 있는 갈색과 흰색 털이 섞인 강아지 한 마리를 꺼냈다.
'시츄'라는 품종으로 10년 전에 많이 유행했던 품종이라고 했다. 이 개는 태어난 지 두 달이 되었고, 기본 접종도 다 마친 상태이니 오늘 데려갈 수 있다고 했다.
시츄라는 품종은 흰색 얼굴에 눈 위로 갈색 털이 균형 잡히게 나 있어야 제대로 된 강아지로 인정받는다고 했다. 업계 용어로는 ‘안경을 잘 썼다’라는 말로 통용된다고 했다.
아이가 안경을 잘 쓴 시츄를 품에 안았다.
45만 원을 6개월 할부로 결제했다. 강아지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가능하면 일시불로 결제하지 말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듯해서였다. 아이는 강아지를 안고 나는 매장에서 받은 방석과 사료그릇을 양손 가득 들고 나왔다.
집에 온 첫날 어리둥절~~
'이제 여기가 네 집이야’
집에 데려온 강아지를 거실에 내려놓았다. 강아지가 이곳저곳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닌다.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이는 흔들거리는 꼬리를 보고 '살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물에 불린 사료를 밥그릇에 담아주자 달려와 허겁지겁 먹는다.
잠시 후 ‘아빠, 살랑이가~’ 하는 아이의 소리를 듣고 나와 보니 강아지가 거실 바닥에 오줌을 싸고 있었다.
바닥을 닦고 거실 구석에 미리 준비해둔 플라스틱 울타리를 쳤다. 울타리 안에 배변판과 방석, 물그릇을 넣은 후 강아지를 집어넣었다.
밖으로 나오고 싶은지 살랑이는 울타리를 잡고 일어서 낑낑댄다. 미리 준비한 삑삑 소리 나는 장난감을 넣어 주었지만 쳐다보지도 않고 낑낑대기만 한다.
적응이 될 때까지는 울타리 안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다음날 이른 아침, 살랑이의 낑낑대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물그릇을 씻어 새 물을 담아주고 사료를 물에 불려 내어 준다. 밤새 갇혀 있던 울타리에서 나온 것이 좋은지 살랑이는 눈을 비비고 나온 식구들을 뛰듯이 따라다닌다.
살랑이가 온 뒤, 우리 가족 대화 소재는 살랑이였다. 휴지곽에 머리를 넣고 빼지 못해 웃음을 준 것부터, 구두끈을 물어뜯은 일, 거실의 난 잎을 씹고 뱉어 놓은 일까지 우리 집 대화는 살랑이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호기심에 휴지곽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었으나 빼지 못해 낑낑댄다.
살랑이도 빠르게 우리 집 식구로 적응해 갔다. 다른 강아지들이 어렵다는 배변 훈련도 쉽게 해내고(물론 기분이 나쁘면 아직도 거실 가운데 보란 듯이 흔적을 남기곤 한다.) 순둥 순둥 식구들을 따라다니며 몸을 비비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