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
나는 종종 사람들과 다른 게 많이 느껴진다.
어렸을 때는 그게 너무 걱정이었다. "사람과 사람은 의지하며 사는 거"라고 했는데, 나는 늘 혼자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까, 막연하게 궁금했다.
알고 보니 나는 계속 아프고 다칠 팔자였다. 손금을 봐도, 사주를 봐도 건강이 안 좋다고 나온다. 처음엔 그런 말이 싫었는데, 지금은 그냥 인정한다. 증거가 너무 많아서.
첫 번째 교통사고는 6살. 자는 사이에 포크레인이 우리 차에게 달려와 박았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때 다친 목의 후유증은 평생을 따라다녔다. 아빠가 "애는 진료 안 봐도 된다"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결정이 후유증을 더 키운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사고들엔 아빠가 은근 많이 껴있다. 원인 제공자 포지션으로. 그러면서 오히려 나를 원망하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 갈비뼈 수술을 하고 나서는 시골에서 올라와 돌봐줬다. 아빠만의 사랑 표현 방식이 그렇게 또 있다.
나도 아빠도 서로 마음을 모두 정확히 읽고 헤아릴 수는 없다. 아빠는 툭툭 말을 던지는 타입이고 사랑스러운 말투를 절대 못한다. 그래도 사람 사이에서 말로 하지 않아도 화가 날 법한 말을 던져도 그게 아끼지 않아서는 아니다. 이것과 반대로,
몸의 상처만 쓰라린 것은 아니었다.
캐나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5년, 애플 직원이었던 사람이 나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며 개인적 연락처를 줬다. 원래 다 친절하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호감이 있어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한 사람이 자신의 반려견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나는 시바견한테 얼굴을 물렸다.
입술이 뜯겨서 파였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를 위로하는 대신
"개니까 개탓을 할 수도 없고, 네가 달려든 거 아니냐 미안하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누구의 탓도 아니다"
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지 개한테 얼굴을 뜯겼는데.
그래도 나는 생각했다. 애처럼 울지 말자. 어차피 이미 다친 거, 어쩔 수 없잖아.
한국에 돌아와서 그냥 내 삶을 살았다. 근데 이메일이 계속 왔다. 보고 싶다고.
다양한 사고도, 수술도 있었지만 마음의 상처가 제일 힘들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겪어오다 보니, 나는 내 감정과 마주칠 용기가 생겼다.
오래 지나서 답장을 보냈다.
"아무 일 없던 척 괜찮은 척 답장했는데, 사실 나 너랑 이야기하면 트라우마 와. 이제 연락하기 싫어. 너무 불편해. 너는 나한테 트라우마야. 그냥 각자 살자."
후련했다.
물음표북을 시작하면서 썼던 '사람 人'이 다시 머리에 떠오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사이가 이렇게 아플 수도 있다는 걸, 나는 몸으로 먼저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