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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영어의 YOU는 단수와 복수가 같은 형태일까?

YOU에 담긴 사연

by 세이지SEIJI

어젯밤, 또 다시 영어 문법책과 씨름하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영어의 '너'는 단수도 복수도 다 똑같이 YOU일까?

다른 인칭대명사들은 주어일 때와 목적어일 때 형태가 다르잖아. '나'만 봐도 주격은 'I', 목적격은 'me'로 확실히 구분되고, 1인칭 단수 'I'와 복수 'we'도 아예 다른 단어다.

그런데 유독 2인칭만 단수든 복수든, 주격이든 목적격이든 모조리 'you'다. 소유격 'your'만 겨우 다를 뿐이지.

'이상한데?'

늦은 밤,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바람에 결국 책장을 뒤져가며 알아낸 이야기를 오늘 들려주고 싶다.



노르만 왕조 이전, 영어가 가졌던 정교함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 프랑스의 윌리엄이 색슨 왕조의 헤롤드를 꺾고 영국에 노르만 왕조를 세우기 전까지, 영어의 2인칭 대명사는 이렇게 세분화되어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정교했던 셈이다. 단수와 복수가 명확히 구분되었고, 주어로 쓸 때와 목적어로 쓸 때의 형태도 달랐다.

그때라면 "I saw you"는 "I saw thee"가 되어야 했고, "You saw me"도 "Thou saw me"나 "Ye saw me" 중 하나여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 영어는 문맥을 파악하지 않는 한 정확한 뜻을 알아내기 어려워졌다.

I saw you. → 나는 너를 봤다 / 나는 너희를 봤다
She gave you the books. → 그녀는 네게 그 책들을 줬다 / 그녀는 너희들에게 그 책들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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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만 프랑스어가 가져온 변화

노르만 왕조는 300년 가까이 브리타니아를 지배했고, 그들의 언어인 노르만 프랑스어는 영어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프랑스어에는 친밀한 관계에서 쓰는 2인칭 단수 'tu'와 격식을 차려야 하는 상황에서 쓰는 'vous'가 있다. 한국처럼 나이로 구분하는 건 아니지만, 가족이나 연인, 친구 사이에는 'tu'를, 낯선 이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vous'를 쓴다.

이런 프랑스어의 특징이 영어에도 스며들기 시작했다. 원래 2인칭 단수였던 'thou'를 프랑스어의 'tu'처럼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이나 친밀한 관계에서만 쓰고, 상류층이나 격식 있는 관계에서는 'you'를 프랑스어의 'vous'처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는 없던 구분이 외래 문화의 영향으로 생겨난 셈이었다.

결국 격식 없는 사이에서만 쓰던 'thou'의 사용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1570년대에 이르면 'you'가 일반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현대 영어에서는 'thou', 'ye', 'thee'가 모두 사라지고 'you'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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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 보이는 것의 힘

생각해보면 참 인간적인 일이다. 뭔가 쿨해 보이는 게 있으면 불편을 감수해서라도 따라 하게 되어 있지 않나. 노르만 왕조가 영국을 지배하던 수백 년 동안, 아무래도 지배계층의 언어인 노르만 프랑스어의 관습이 더 세련되고 품격 있어 보였을 것이다. 그런 것을 영어를 쓰던 피지배층이 따라 하면서 원래 영어의 체계에 변화가 온 것이겠지.

논리적으로 따지면 참 쓸데없는 일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역사를 보면 언어는 항상 이성적으로나 합리적으로만 변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늦은 밤, 영어 문법책을 덮으면서 문득 드는 생각.

이처럼 세상에 '원래 그런 것'은 없다. 다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you' 하나에도 이런 깊은 역사가 숨어 있었다니. 영어 공부를 하다가 또 인생을 하나 알아버린 밤이었다.


그러니 이제 영어에게도 사연을 물어보자. 그 안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발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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