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속에 숨은 시간의 흔적들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다가 냉장고에서 가지를 발견했다. 윤기 나는 보라색 껍질이 참 예쁘다.
문득 궁금해졌다. 왜 영어로는 eggplant라고 부를까?
eggplant
egg는 달걀이고 plant가 식물인데... '달걀 식물'?
한국의 가지를 보면 길쭉하고 보라색인데, 어디를 봐도 달걀과는 거리가 멀다. 이상하다. 언어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텐데.
조금 찾아보니, 유럽에서는 우리가 아는 그 보라색 가지가 아니라 흰색에 달걀처럼 동글동글한 가지가 먼저 재배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eggplant라는 이름이 붙었던 것이다.
아, 그렇구나!! 이제야 납득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가지를 eggplant라고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aubergine [오버진]
18세기 프랑스어에서 온 말이란다. 같은 가지인데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니. 언어의 역사가 얼마나 복잡하고 흥미로운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가지'라고 부르는 이 보라색 채소도 원산지는 인도이고,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왔다고 한다. 신라 시대부터 재배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니, 얼마나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해온 채소인가.
언어를 공부하다 보면 이런 순간들이 참 많다.
단어 하나에도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다. 지역마다, 시대마다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유럽 사람들에게는 가지가 흰 달걀처럼 보였고, 프랑스에서는 aubergine이라 불렀고, 그 말이 바다를 건너 영국으로 갔다. 미국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그 이름을 지켜왔고.
언어는 정말 살아있는 생명체 같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변화하고,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품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오늘 밤, 가지볶음을 해먹으면서 생각해본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이 가지 안에는 인도에서 시작된 수천 년의 여행이 담겨있고, eggplant라는 단어 안에는 미국 사람들이 처음 이 낯선 채소를 마주했던 그 순간의 놀라움이 담겨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소통의 도구를 익히는 게 아니다.
시간을 여행하는 일이고, 다른 문화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며, 결국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일이다.
내일은 또 어떤 단어가 나를 놀라게 할까.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