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속에 숨은 1,500년의 시간
오늘 아침, 토스트를 만들어 먹으면서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영어에서 빵(bread)은 셀 수 없는 명사라고 배웠는데, 이게 정말 이해가 안 됐던 것이다. 물이나 공기, 모래 같은 건 정말 세기 어려우니까 그렇다 치자. 그런데 빵은 명백히 하나, 둘, 셋... 셀 수 있지 않나?
한국인에게 빵이라고 하면 뭐가 떠오를까.
한국인에게 '빵'의 역사는 반세기도 안되는 '신문물' 같은 거였지 않겠나. 정확히는 모르지만 한국 전쟁 후 단팥빵을 시작으로 지금의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이런 제과점에 이르렀던 것 같다.아마 제과점 진열대에 예쁘게 포장된 단팥빵, 크림빵, 소보루빵... 이런 것들이 한국인이 갖는 '빵'의 이미지가 아닐까.
그런데 왜 영어에서는 bread가 셀 수 없는 명사일까?
언어를 공부하다 보면 이런 순간이 온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규칙 앞에서 그냥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거나, 아니면 끝까지 파고들어가거나.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1,500년 전, 영어가 처음 생긴 브리튼 섬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그때의 앵글로색슨족에게 빵이란 무엇이었을까? 지금처럼 제과점에서 예쁘게 포장된 완성품을 사다 먹는 것이 아니었다. 집에서 그날그날 가진 밀가루 양에 따라 반죽을 만들고, 화덕에 구워내는 것이었다.
크기도 모양도 매번 달랐을 것이다. 밀가루가 많으면 큰 덩어리가, 적으면 작은 덩어리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하나의 빵인지 구분하기도 애매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bread는 '하나, 둘, 셋'으로 셀 수 있는 개체가 아니라, 물이나 모래처럼 크기와 형태가 유동적인 '물질'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럼 우리가 제과점에서 사는 달콤한 빵들은 영어로 뭐라고 할까?
pastries(페이스트리즈)
우유, 설탕, 버터, 계란이 들어간 달콤하고 기름진 것들. 이런 것들은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만들어지니까 셀 수 있는 명사가 된다.
반면 영어에서 말하는 bread는 밀가루+물+소금+이스트. 그게 전부다. 우리네 쌀밥처럼 담백한 주식용 빵 말이다. 한국에서 요즘 유행하는 깜빠뉴(시골빵) 같은 것이 원래의 bread에 가깝다.
문화가 다르면 같은 사물도 다르게 인식된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이 관점으로 다른 셀 수 없는 명사들을 보니 다 이해가 된다.
치약(toothpaste)과 비누(soap)도 우리에겐 슈퍼마켓 진열대의 완성품이지만, 원래는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걸쭉한 액체'였다. 그것을 용기에 담거나 틀에 굳혀서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치약 하나는 a tube of toothpaste이고, 비누 한 개는 a bar of soap이다.
종이(paper)도 마찬가지다. 펄프를 쫘악 눌러서 말린 큰 덩어리가 원래 모습이고, 우리가 쓰는 A4용지는 그것을 필요한 크기로 자른 것이다. 그래서 영어로 "a piece of paper"라고 해야 종이 한 장이 된다.
만약 "a paper"라고 하면? 그럼 신문이나 논문을 뜻하게 된다. 같은 단어가 셀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의미가 바뀌는 것이다.
이런 걸 알아가는 재미가 영어 공부의 진짜 묘미인 것 같다.
단순히 "bread는 셀 수 없는 명사니까 외워"라고 하는 게 아니라, 왜 그렇게 됐는지 그 뒤에 숨은 이야기를 찾아가는 것.
1,500년 전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언어는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다. 그 언어를 쓰던 사람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시간이 켜켜이 쌓인 역사서다.
영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다른 문화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일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의 문화와 사고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일이다.
오늘 아침 토스트 한 조각에서 시작된 궁금증이 1,500년 전 앵글로색슨족의 삶까지 데려다주었다.
언어 공부의 신기한 마법이다.
내일은 또 어떤 단어가 나를 시간 여행시켜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