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크리스마스의 세 가지 진실
11월인데 벌써 우리 동네 가로수마다 크리스마스 전구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카페에 들어서면 트리가 서 있고, 식당에서는 캐롤이 흘러나온다. 아직 3주도 더 남았는데 말이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상점 유리창이나 포스터에서 자주 보는 'X-MAS'라는 표기. 크리스마스를 왜 X-MAS라고 쓰는 걸까? X는 뭘 의미하는 걸까? 혹시 'Christ'를 지워버린 걸까? 갑자기 이 작은 의문이 커지면서, 크리스마스에 대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하나씩 의문으로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X-MAS를 세속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Christ'를 X로 바꿔서 종교색을 빼버린 것 같으니까. 실제로 일부 기독교인들은 이 표기를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진실은 정반대다.
X-MAS의 X는 그리스어 알파벳 '카이(Chi, Χ)'다.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를 뜻하는 단어 'Χριστός(크리스토스)'의 첫 글자가 바로 이 Χ다. 그러니까 X-MAS는 Christ를 지운 게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전통적인 약어인 셈이다.
'-mas'는 영어의 'Mass(미사)'에서 온 것으로, 고대 영어 mæsse, 라틴어 missa에서 유래했다. 결국 X-MAS는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는 표현이다.
이런 약어 전통은 수세기 전부터 있었다. 중세 수도사들이 양피지를 아끼기 위해 'Christ'를 'Χρ'로 줄여 썼고, 'Chi-Rho(카이-로)' 기호는 지금도 많은 교회에서 사용되는 상징이다. X-MAS를 세속화의 증거로 보는 건, 역사를 모르고 하는 오해일 뿐이다.
그럼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인 이유는 뭘까? 성경 어디에도 예수의 정확한 탄생일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12월 25일을 기념한다.
이 날짜가 공식화된 건 4세기,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다. 336년 로마에서 12월 25일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했다는 최초의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날이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이교 축제와의 결합이다. 로마에는 이미 12월 25일 즈음에 'Dies Natalis Solis Invicti(불패 태양의 탄생일)'라는 태양신 축제가 있었다. 동지를 지나 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점, 태양의 부활을 축하하는 날이었다. 교회는 이 날짜를 기독교화했다. '빛으로서의 그리스도' 이미지와 태양의 재생을 연결시킨 것이다.
두 번째는 신학적 계산이다. 초기 기독교 학자들은 예수의 수태일을 3월 25일로 봤다. 여기서 9개월을 더하면? 12월 25일이 나온다. 이 계산법은 고대 교회에서 꽤 널리 받아들여졌다.
세 번째는 전략적 선택이다. 교회는 이미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던 날을 기독교 축일로 대체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기독교화를 진행할 수 있었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유도 분명히 작용했다.
결국 12월 25일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여러 문화와 전통이 만나 합의된 상징적 날짜인 셈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크리스마스의 또 다른 상징, 빨간 옷에 긴 흰 수염의 산타클로스. 그런데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나는 조금 다른 이름을 들었다.
Father Christmas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Santa Claus'라고 부른다. 이 이름은 네덜란드어 'Sinterklaas(성 니콜라스)'에서 유래했다.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이 전통이 퍼졌고, 19세기 상업화를 거치며 지금의 산타 이미지가 완성됐다.
반면 영국에는 중세부터 'Father Christmas'라는 인물이 있었다. 원래는 겨울 축제를 상징하는 전통적인 캐릭터였다. 빅토리아 시대를 거치며 미국식 산타 이미지가 유입되면서, Father Christmas와 Santa Claus가 결합됐다. 지금은 두 이름이 혼용되지만, 여전히 영국 사람들은 'Father Christmas'라는 표현에 더 친근함을 느낀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미국과 영국 양쪽의 영향을 받아서 'Santa Claus'를 주로 쓰지만, 'Father Christmas'도 함께 사용된다.
같은 영어권이라도, 역사적 경로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른 것이다. 문화는 이렇게 전파되고, 섞이고, 변형된다.
X-MAS를 찾아보다가 결국 크리스마스 전체의 역사를 들여다보게 됐다. 그리고 깨달은 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 축제에 '순수한 기원'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그리스 문자, 태양신 축제에서 온 날짜, 네덜란드 성인 전설에서 비롯된 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는 처음부터 하나의 순수한 전통이 아니었다. 여러 문화가 만나고, 충돌하고, 타협하고, 융합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종종 '원래'를 찾으려 한다. 원래의 의미, 원래의 전통, 순수한 기원. 하지만 언어도, 문화도, 사람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모든 것은 이미 섞여 있고, 변해왔고, 계속 변할 것이다.
X-MAS라는 표기 하나에서 시작된 궁금증이, 결국 나를 이런 생각에 이르게 했다. 중요한 건 '원래'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의미를 부여하는가 아닐까.
크리스마스 전구가 반짝이는 거리를 걸으며, 나는 이제 X-MAS를 다른 눈으로 본다.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역사와, 서로 다른 문화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혼종을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도 결국 이렇게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순수한 기원 없이, 수많은 만남과 섞임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