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the dogs는 왜 '망하다'란 뜻일까?

영어 이디엄을 공부할 때 주의할 점

by 세이지SEIJI

이디엄을 무작정 외우기 전에

영어 공부를 하다 보면 선생님들이나 교재에서 꼭 강조하는 게 하나 있다. "이디엄(idiom)을 많이 알아야 영어를 잘하는 거예요." 그래서 초급 단계부터 'a piece of cake', 'break a leg', 'spill the beans' 같은 표현들을 달달 외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표현들, 정말 제대로 알고 쓰는 걸까?


이디엄은 단순히 '단어들의 조합'이 아니다. 그 문화권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인식이 녹아있는 표현이다. 'It's raining cats and dogs'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냥 "비가 많이 온다"는 뜻만 알고 쓴다. 하지만 영어권 화자들에게 이 표현은 17세기 런던의 배수시스템, 거리를 떠도는 동물들, 그리고 당시 사회상이 함께 떠오르는 말일 수 있다.

초급 단계에서부터 이디엄을 무작정 외워 쓰는 건, 마치 한복을 입는 법도 모르면서 한복만 걸치고 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겉모습은 그럴싸해 보여도, 정작 그 안에 담긴 의미와 뉘앙스를 모르면 오히려 어색함만 만들어낸다.

특히 영어에는 유독 '개(dog)'를 이용한 표현들이 많다. go to the dogs, a dog's dinner, a dog's life, sick as a dog, dog-tired, a doggy bag... 왜 하필 개일까? 그리고 이 표현들은 어떤 문화적 배경에서 나온 걸까?

오늘은 그중에서도 "go to the dogs"가 왜 '망하다'라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게 되었는지부터 이야기해보려 한다.



go to the dogs의 어두운 기원


Everything is going to the dogs these days.
(요즘 모든 게 엉망이 되어가고 있어.)


이 표현을 처음 배웠을 때, 나는 솔직히 이상했다. 개들에게 간다는 게 왜 망한다는 뜻이지? 개는 충직하고 귀여운 동물 아닌가?

하지만 현대의 반려견 문화와 달리, 17세기 이전 유럽에서 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쓰레기나 먹다 남은 것을 개들에게 던지던 관행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이 먹지 않는 음식 찌꺼기나 쓸모없어진 물건들을 개들에게 던졌다. 개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존재였고, '사람에게 더 이상 쓸모없는 것'이 가는 곳이 바로 개들이었던 것이다.

이런 관습이 은유로 확장되면서, '가치가 떨어진 것', '망가진 것', '파산한 것'을 표현할 때 "go to the dogs"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이 표현이 처음 기록된 것은 1622년이라고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 "개들에게 간다" = "이제 쓸모없어졌다" = "망했다"는 등식이 성립한 것이다.


image-4.jpg La venerie de Jacques du Fouilloux (Poitiers, 1562), p. 19.(Copy of Biodiversity Heritage Library)

비가 고양이와 개처럼 온다고?

비슷한 맥락에서 "It's raining cats and dogs"라는 표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폭우가 쏟아질 때 쓰는 이 표현의 정확한 유래는 불확실하다. 여러 설이 있는데, 그중 가장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이렇다.

17세기 영국의 배수 시스템은 지금처럼 잘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비가 많이 오면 거리의 배수로와 도랑에서 떠돌던 고양이와 개의 시체들이 물에 쓸려 내려왔다고 한다.

폭우가 쏟아진 뒤 거리에 떠내려온 동물 사체들을 보며 사람들이 "마치 하늘에서 고양이와 개가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끔찍하지만, 이것이 당시 현실이었다.

또 다른 설로는 단순히 과장된 유머 표현이라는 주장도 있다. "비가 너무 세게 와서 고양이와 개가 떨어질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이미지를 일부러 만들어낸 것이라는 거다.

어느 쪽이든, 이 표현 속에는 개와 고양이가 '떠돌이', '쓸모없는 존재', '버려진 것'으로 취급되던 시대의 인식이 녹아있다.

** It's raining cats and dogs라고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긴 하지만, 요즘은 그리 잘 쓰이지 않는 구시대적 표현이긴하다. 요새는 It's pouring. 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더 많다.



개를 둘러싼 영어 이디엄들

영어에는 유독 개가 들어간 부정적 표현들이 많다.

a dog's dinner - 엉망진창인 것
"He made a dog's dinner of that presentation."
(그는 발표를 완전히 망쳤어.)

개밥처럼 아무렇게나 섞인 것, 형편없는 것을 의미한다.


a dog's life - 비참한 삶
"He's been living a dog's life since he lost his job."
(그는 직장을 잃은 후로 비참하게 살고 있어.)

개의 삶이 힘들고 고단하다는 인식에서 나온 표현이다.


sick as a dog - 몹시 아픈
"I was sick as a dog after eating that seafood."
(그 해산물을 먹고 나서 엄청 아팠어.)

개가 토하거나 아픈 모습에서 유래했다고 추정된다.


dog-tired - 녹초가 된
"After working 12 hours, I was dog-tired."
(12시간 일하고 나니 완전 녹초가 됐어.)

사냥개가 하루 종일 뛰어다닌 후 지쳐 쓰러지는 모습에서 나온 말이다.


a doggy bag - 남은 음식을 싸가는 봉투

레스토랑에서 음식이 남았을 때 "개 줄 거예요"라고 말하며 싸가던 관습에서 유래했다. 사실은 자기가 먹으려고 싸가면서도, 체면상 "개 줄 거예요"라고 둘러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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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속에 담긴 시대의 그림자

이 모든 표현들을 보면 하나의 패턴이 보인다. 서양 문화권, 특히 근대 이전의 영국과 유럽에서 개는 지금처럼 사랑받는 반려동물이 아니었다.

개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존재, 거리를 떠도는 존재, 사람이 버린 것을 먹는 존재였다. 그래서 '개'와 관련된 표현들은 대부분 부정적이고, 저급하고, 비참한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시대가 바뀌면서 개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 'man's best friend(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표현이 생겨났고, 'puppy love(풋사랑)', 'lucky dog(운 좋은 사람)' 같은 긍정적 표현들도 등장했다.

하지만 오래된 이디엄들 속에는 여전히 과거의 인식이 화석처럼 박혀있다.



이디엄을 배울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져보고 싶다.


우리는 정말 이런 표현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써야 할까?


나는 외국어를 배울 때, 특히 이디엄을 배울 때, 우리가 조금 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디엄은 그 문화권의 역사와 가치관을 반영한다. 'go to the dogs'라는 표현 속에는 개를 쓰레기 처리 도구로 여기던 시대의 인식이 담겨있다. 'It's raining cats and dogs' 속에는 배수시스템이 열악해서 동물 사체가 거리에 떠다니던 시대의 풍경이 담겨있다.

이런 배경을 모른 채 단순히 "go to the dogs = 망하다"라고만 외워서 쓴다면, 우리는 그 표현 속에 담긴 가치관까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물론 언어는 도구고, 소통이 목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언어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형성하기도 한다. 누군가 저 표현을 썼을 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는 것은 필요한 과정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저런 표현을 아무 생각없이 따라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국어에서 개를 이용한 표현들("개XX", "개고생" 등)도 대부분 부정적이다. 이것 역시 우리 문화 속에서 개가 어떻게 취급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런 표현을 계속 아무 생각 없이 써야 하는 건 아니다. 특히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지금, 우리는 언어 사용에 대해서도 좀 더 의식적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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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엄 너머를 보는 공부

영어를 배운다는 건 단순히 단어와 문법을 익히는 게 아니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세계관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디엄을 공부할 때는 다음을 기억하면 좋겠다.

첫째, 이디엄의 유래와 배경을 함께 공부하자.
둘째, 그 표현 속에 담긴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자.
셋째, 무조건 따라 쓰기보다는, 내가 정말 쓰고 싶은 표현인지 고민해보자.


다음에 누군가 "Everything is going to the dogs"라고 말한다면, 그 표현 속에 17세기 거리를 떠돌던 개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걸 떠올려보자.

그리고 영어 공부를 하면서도, 우리의 시선과 판단을 잃지 말자.

언어는 도구지만, 동시에 거울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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