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INA Nov 28. 2020

나에게 주어진 아침


아침에 일어나니 새벽 5시이다. 양치를 하고 어젯밤 꺼내놓은 운동복을 챙겨 입는다. 키친으로 내려가 그린티를 만들고, 레몬을 짜서 넣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생각을 하지 않아도 하게 되는 모닝 루틴이다. 아침묵상을 하고, 매일 해도 매일 어려운 팔 굽혀 펴기를 25번 한다. 보기엔 쉬어 보여도, 해보면 어려운 것, 팔 굽혀 펴기가 그중 하나이다. 내 건강을 위한 것이었다면 하지도 않았을 그것, 캠페인 참여 중 이어서 하루 하루 열심히 하고 있지만, 매일 해도 힘들다.


6:30 AM. 해가 떠오르려고 하는 아침, 방탄 커피를 마시면서 집을 나선다. 설렘이 가득하다. 그렇게 춥지 않은 달리기 좋은 아침이다. 혼자 운전을 하며 가는 이 시간이 감사하다. 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게 허락되는 이 시간, 당연하 것 같지만 당연하지 않은 시간이다. 고속도로로 달려갈 수 있는 필라델피아 시티. 나는 링컨 드라이브 (Lincoln Drive)를 타고 그 길 끝에서 켈리 드라이브 (Kelly Drive)를 만나 운전해서 들어간다. 가는 길에 드리워져 있는 단풍들이 지금 우리가 지나가는 계절을 보여 주고 있다. 오늘의 가을을 이렇게 만난다. 


오늘은 필라델피아에서 Loop Race를 하는 날이다. 작년 12월 8일 필라델피아에서 처음 Loop Race를 달렸다. 필라델피아에서 가장 오랜 된 역사를 자랑하는 레이스이다. 1972년 시작돼서 49번째 계속되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Virtual로 진행되고 있다. 8.4 마일을 어디서든 달려도 되지만, 추워지기 전에 시티를 달려보고 싶은 마음에 나는 원래 코스를 달리기로 했다. 필라델피아 뮤지엄 앞에서 시작해서, 록키 (Rocky) 동상도 지나고, 보트하우스 로도 지나고, 필라델피아 스쿨킬 강 (Schuylkill River)을 따라 달릴 수 있다. 작년에 달려봐서, 어디다 주차를 해야 하는지, 화장실은 어디를 써야 하는지 이런 중요한 것들을 알고 나가니, 아침이 분주하지 않다. 링컨 드라이브를 따라 시티로 나가는 길에 아직 단풍이 한창이다.


7:15 AM. 주차를 하고, 필라델피아 뮤지엄 쪽으로 걸어가 본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뮤지엄 길이 좋다. 해가 떠오르고 있다. 오랜만에 지나가 보는 록키 동상 이다. 보통 여행객들에게 둘러싸여 있어 이렇게 혼자 앞에 서보는 게 얼마 만인가 싶다. 록키 동상에 쓰여있는 이 문구 뭔가 나에겐 너무 억지스럽게 세다. 


"It's not how hard you hit. It's how hard you can get hit and keep moving forward- that's how winning is done." - Rocky Balboa
얼마나 세게 때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얼마나 세개 맞고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승리이다.
- 록키 발보아


누구를 세게 때리고 싶지도 않고, 또 세게 맞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매일 할것이다. 영화 록키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래가 나오며 뛰어 올라가는 뮤지엄 계단을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필라델피아는 시원하다. 아침에만 보이는 게 있다. 아직은 조용한 아침이 좋다.


필라델피아 ©SEINA


7:30 AM. 레이스를 시작하려고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도, 레이스를 알려주는 디제이도 없었다. 레이스 앱을 켜고, 혼자 달리기 시작한다. 혼자서 달린다고 해서 외로운 것도 아니고, 같이 달린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달리기 시작은 언제 어디서나 같다. 천천히 시작한다. 천천히 편하게 시작해야 한다. 처음에 너무 신이 나서 빨리 달리면 중반부터 힘이 든다. 빨리 달리고 싶어도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달려야 한다. 차로 지나가면 운전을 하느라 놓치고 가버리는 그곳들을 눈에 담으며 간다. 단풍이 아름답던 필라델피아는 아직 가을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강을 따라 뛰는 코스는 하늘의 구름도 오늘의 가을도 담고 있는 강을 보고 생각에 잠기게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10년 만에 케임브리지에 돌아와서 

찰스강을 마주했을 때 얘기를 썼다. " 강이라고 하는 것은 웬만큼 큰 변화가 없다면, 오랜만에 봐도 대체로 똑같이 보이게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 그 자체는 거의 조금도 변한 것이 없이 예전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내가 마주하고 달리고 있는 필라델피아의 스쿨킬 강 (Schuylkill River), 작년이나 올해나 변함없어 보인다. 그렇게 변함없이 묵묵히 흘러간다. 그렇지만 같은 강이 아니다. 계속 묵묵히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라델피아 스쿨킬 강 (Schuylkill River)©SEINA


2019년 12월 8일 첫 Loop Race 8.4 마일을 1시간 12분 29초에 달렸다.

2020년 11월 27일 두 번째 Loop Race 혼자 달린 8.4 마일 1시간 14분 39초에 달렸다.

달린 시간, 페이스만 보면 놓치는 것이 많을뻔한 그런 레이스이다. 달리기 위해서 달렸지만, 달리면서 더 많은 것을 얻기 때문이다. 


나도 작년이나 올해나 변함없어 보인다. 그러나 같은 내가 아니다. 변함없이 묵묵히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번의 계절을 지나가고, 첫 Loop Race 이후 934 마일 (~ 1,503 키로)를 달렸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24 시간의 시간. 나에게 주어진 아침 시간은 나에게 많은 것을 허락한다. 그 시간을 잘 쓰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 그 시간을 잘 쓰면 나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도 될 수 있다. 그 소중한 아침 시간은 찰나에 지나간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되고 싶은 게 있다면, 아침 시간을 잘 써보기를 해보면 좋겠다.


내가 좋아서 가는 길 가려고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고, 힘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간다.

오늘도 그렇게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간다. 매일 꾸준히 천천히 변하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오늘도 간다. 

오늘도 달리고 시작한다.









이전 02화 오늘도 달리고 시작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