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엄마미 : 쉬어 가는 중
Mommy loves me more. 엄마는 나를 더 사랑한다며 동그란 눈은 더 동그랗게, 작은 눈썹을 잔뜩 올려 뜨고 내 배 위에 누어서 이미 정해 놓은 정답을 요구하는 둘째 보물을 안으며 일어나는 그런 아침이다. 아들이어서 그런지, 요즘 크고 있어서 그런지 이젠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언제나 보물 첫째는 자기가 엄마의 첫사랑이라는 것을 아는지, 둘째에게 애를 쓰고 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엄마는 나를 제일 처음 사랑했고, 나를 사랑한 시간이 더 길며, 내가 더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고 알고 있는 듯한 자신감에서 나오는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눈빛의 조용한 자신감.
So, Mommy who do you love more? 그래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야? 이길수도 질 수도 없는 이게임 나는 둘을 양손에 가득 안고, 말해준다. I love your daddy the most... 결국 내가 지는 게임. 둘 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짧은 순간에 동맹을 맺고 손을 잡고 지하실로 내려가서 놀겠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려가는 발걸음이 빠르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딩굴거릴 시간. 이 시간이 감사하다.
하루 종일 비가 왔던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드디어 해가 나온 아침. 햇살이 창문에 닿아 방안 벽에 창문을 새겨놓은 그런 아침이다. 딩구르르 굴러, 요즘 읽고 있던 책을 집어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신간 소설 [일인칭 단수]이다.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처음 만난 책은 2020년을 막 시작하던 작년 그 유명한 작가의 소설이 아닌, 그의 달리기를 축으로 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 책을 읽으며, 달리며 나의 달리기를 기록해온 2020년은 소중하게 기억될 것이었다. 2020년이 며칠 남지 않은 12월의 지금, 작가님의 신작을 읽고 있다.
오늘 아침 읽었던, 8개의 단편 소설 중 사육제 [Carnaval] 단편 소설이라고 하기엔 자서전 같이 읽히는 착각을 들게 할 정도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못생긴 여자였다-"로 시작하고 있었다.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못생겼다면, 얼마나 못생긴 사람일까? 얼굴이 못생긴 사람이었을까? 마음이 못난 사람이었을까? 그저 첫 문장을 읽었을 뿐인데, 그 짧은 찰나에 질문이 꼬리를 문다.
"추한 가면과 아름다운 민낯 - 아름다움 가면 과 추한 민낯"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민낯으로 책을 읽고 있는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 세상 기준에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아름다운 민낯으로 살아가를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추악한 마음과 행동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어떤 가면을 쓰고, 때론 아름다운 척, 아는 척, 모르는 척, 자신의 민낯을 가린 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우린 누구나 많건 적건 가면을 쓰고 살아가. 가면을 전혀 쓰지 않고 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악령의 가면 밑에는 천사의 민낯이 있고, 천사의 가면 밑에는 악령의 민낯이 있어. 어느 한쪽만 있을 수는 없어. 그게 우리야. 그게 카니발이고. 그리고 슈만은 사람들의 그런 여러 얼굴을 동시에 불 줄 알았어 - 가면과 민낯 양쪽을. 왜냐하면 스스로 영혼을 깊이 분열시킨 인간이었으니까. 가면과 민낯의 숨 막히는 틈새에서 살던 사람이니까. - P169 - 사육제 [Carnaval], 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안타깝게도, 미안하지만 나 또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드러나는 화장기 없는 쌩얼의 민낯은 부담스럽고, 상황에 따라 어떤 가면을 써야 하는지도 아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 가면의 두께 가 두꺼워지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면을 써야 하는 상황들을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나이다. 내가 아니 다른 사람의 가면을 너무 오래 쓰고 있다 보면, 가면 아래 또 다른 민낯이 있다는 사실을 막강하고 살아 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라고 나의 민낯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다행스럽게도 내가 민낯을 보여줘도 괜찮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좋아 보이는 많은 가면들을 모으기보단, 가면을 두껍게 하기보단, 내 민낯이 아름다워 지기를 고민하는 아침이다. 2021년 바쁠 예정이다 나의 아름다운 민낯을 위해서...
화장을 안 해도 예쁘다는 아들의 말을 믿고, 민낯으로 루벤스타인의 슈먼의 카니발을 찾아서 들으며 글을 쓰고 있는 아침이다. 오늘 누가 예고 없이 집에 찾아오지는 않았으면 한다. 아직 내 민낯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래도 코로나가 한창이 시국에 우리 집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사람이라면, 내 민낯이 괜찮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