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사람) 만큼 (달리기)를 사랑할 순 없어
아침에 일어나서 블라인드를 드르륵 올려 밖을 본다. 해가 떠오르려고 하는 아침이다. 아가들은 아직 자고 있다. 양치를 하고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마스크를 쓰고 문을 닫고 나선다. 밖에 나가기 전 자연스럽게 선글라스를 챙기는 것처럼, 코로나 이후 마스크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해가 올라오는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해가 떠오르는 순간, 하늘도 그 주변의 공간도 해가 떠오르는 시간을 지나가며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미묘한 차이를 보여주면 떠오르는 해가 맨해튼 스카이 스크레이퍼에 부딪쳐서 허드슨 리버에 닿아 반짝인다. 아침에만 볼 수 있는 것이다.
토요일 아침이면, 내 침대에서 일어나 달리기를 하러 나가야 할 시간이다. 여유롭게 맨해튼을 바라보며 걷고 있다니, 이래서 오늘은 오늘만 산다. 오늘은 천천히 달리기 (걷기)로 한다. 어제 이미 달렸다. 어제 달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 아이들과 외박한 아침이 여유롭다.
걸어서 도착한 스타벅스에서, 나이트로 골드브류를 들고 다시 걸어오는 길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아침을 달리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곳이던, 익숙한 곳이던 아침이면 안전하게 달릴곳을 찾아 달린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좋은 곳을 보면 읊조리게 된다. "여기 달리기 코스로 좋겠는데...?" 그리고 재빠르게 구글맵 태그를 해둔다. 그 생각이 달아나버리기 전에, 다시 기억할 수 있게 그렇게 묶어둔다.
여유가 있는 오늘 아침 맨해튼이 보이는 호텔 앞에서 읽기 시작한 책은 정세랑 작가님의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수 없어"이다. 7월 '시선으로부터'라는 책으로 처음 만난 작가님에 푹 빠져 버렸다. 작가님 이름에 "세"자가 들어간다. 이름도 예쁘다. 이름에 '세'자 들어간 사람들은 다 예쁜가? 세랑.. 세나... 작가님의 또 다른 책들을 찾아보다가, 에세이인 신작을 만났다. 제목에 '사랑'이 들어가서 좋았고, 지구에 살고 있는 지구'인' 사람들 이야기 일 것 같아 기대가 되는 마음으로 책 표지를 쓰담 쓰담하고 열었다.
책의 시작은 '뉴욕'이다. 내가 알고 있는 뉴욕을 작가님은 어떻게 보고 담아내고 있을까 라는 호기심에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는데 단숨에 빠져든다. 커피 한 모금, 책 한 장을 넘기는 여유 있는 토요일 아침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마 아미.... 웨어 알유? 아 미스유...." 밤새 자는 동안 엄마가 그리운 사랑 넘치는 아들이 호텔방에서 걸어 나와 소파에 앉아 있는 내 위에 올라와서 눕는다. 자식의 무게... 5살 아들의 무게... 그 사랑의 무게는 순식간에 내가 하고 있던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잠시 안고 있는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좀 더 자겠다는 아들이 고마운 아침이다.
( ) 만큼 ( )를 사랑할 순 없어
나는 이 두 개의 괄호를 어떤 것들로 채우술 있을까 했더니, (달리는 사람) 만큼 (달리기)를 사랑할 순 없어 였다. 어제 아침 16.1 km (10 마일)을 달렸다. 8월 의 아침은 풀냄새, 나무 냄새, 벌레 우는 소리, 새소리, 여름 아침의 향기와 소리로 가득하다. 3km 정도 달리고 나니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달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각자의 스피드와 리듬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유난히 여자 러너들이 많이 달리고 있던 아침이었다. 혼자 달리고 있던 여자, 같이 달리고 있던 여자들, 빨리 걷고 있던 여자들, 천천히 걷고 있던 여자들, 앉아서 물 멍을 하고 있던 여자들, 움직이는 물을 바라보던, 걷고, 달리던 각자의 스피드와 리듬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Run like a girl. 여자처럼 달린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장이다. 여자는 남자와 다르기에 여자처럼 달린다.라고 여자를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다른 게 읽는다. 여자처럼 강하게 달린다. 이 시대 여자처럼 달리려면,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누구보다도 용감할 수 있는 용기 필요하다. 각자의 리듬으로 멋있게 달려 나가는 여자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강하게 달려 나간다. 여자처럼 달린다는 말은 여자 이기에 멋지게 달린다는 말이다.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뛰어갈 때, 뒤돌아 보지 않는다. 많은 러너들이 공감할 것이다. 아주 찰나의 순간 두발이 공중에 떠있을 때가 있다. 달리면서 내가 어쩜 아주 잠깐 날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순간이다. 그렇게 flow를 느끼며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끝나버린
16.1 km 였다.
10 마일 ~ 16.1 km 5'36" 1:30: 04
5km 5'11" 27:34
10km 4'52" 54:57
15km 6'01" 1:23:56
오늘도 달리고 시작하는 나의 오늘은 계속된다. 매일 '사랑' 할 수 있는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