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2021 : 필라델피아 디스턴스런 하프마라톤
얼마나 뒤척였을까?
막 잠이 드려고 하는데, 알람이 울린다.
4:30 AM 아직 별이 반짝 거리는 하늘 준비를 하고 나가는 아침이다.
뉴욕 레이스를 같이 달릴 사촌 동생과 그리고 오늘 첫 레이스를 달릴 친구를 픽업하러 달려간다.
다들 자고 있을 새벽, 우리 왜 이러는 걸까? 누가 먼저 달리자고 했었지? 무슨 의미가 있니? 하며 코로나 이후 첫 설렘과 들뜬 마음은 아직 덜 깨어있다. 커피로 잠을 깨고, 필라델피아 센터시티로 달려가는 길, 까르륵까르륵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레이스의 시작은 필라델피아 뮤지엄 뒤쪽에서 시작 하기에 저번 주에 연습런을 하러 왔을 때 주차를 했던 데로 가려는데, 레이스 때문에 이미 경찰차가 길을 다 막고 서있다. 돌아나가서 시티 반대편에다 주차를 하고 스쿨킬 (Schuykill River) 강가를 옆에 두고 조금씩 밝아지는 하늘을 보며 레이스의 출반점 라인 앞으로 걸어간다.
눈에 띄게 달라지는 아침, 어두웠던 하늘이 핑크빛을 머금고 있다. 아침이 밝아오는 순간이다.
친구의 첫 레이스 5KM 시작으로,
하프마라톤이 시작하는 스타트 라인으로 향한다.
이제야 실감이 난다. 스트레칭도 하고, 사진도 찍고, 숨도 고르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뿌뿌~ Corral 4 그룹, 1:50 페이스 그룹이 스타팅 라인을 달려 나가기 시작한다. 차로 수도 없이 다녔던 거리, 두발로 필라델피아 센터시티에서 떠오는 태양을 바라보면 달려 나간다.
1마일 이 지나고, 필라델피아의 상징적인 시티홀을 지나간다. 시작했던 곳을 돌아 뮤지엄을 지나, 스쿨킬 (Schuykill River) 강을 따라 뛰어간다. 필라델피아를 관통하여 지나가는 구간 2마일, 3마일, 여름 내내 트레이닝했던 대로, 그렇게 내 리듬을 찾아 달려 나간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필라델피아는 너무 아름다웠다. 구름 한 점, 습도도 낮았던, 완벽하다면 완벽에 가까운 바삭한 가을 아침이었다.
8킬로미터가 지나고 나서야, 몸이 풀렸다.
7마일이 지나고 챙겨갔던 젤을 꺼내 먹었다.
레이스 중간중간에 나오는 물과 게토레이를 번갈아 마시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나를 지나가는 사람들, 내가 지나가는 사람들
각자의 페이스로 달려간다.
조금이라도 몸에 힘이 들어갈 것 같으면, 웃었다.
그리고 내 페이스를 지켜 나갔다.
웨스트 브릿지를 지나고 나니 코너에 10 마일 싸인이 너무 반갑다.
마지막 구간, 3마일 이 조금 넘는 5km 만 달려가면 된다.
레이스 구간 보급을 위해 봉사를 하는 사람들
레이스를 응원하러 나온 사람들
급한일을 볼 수 있는 간이 화장실들 까지도 고마운 순간들이었다.
12마일까지 꾸역꾸역 오른발 왼발을 번갈아 내려놓는다.
항상 그렇듯이 마지막 800 미터가 제일 힘들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몸이 너무 무겁다.
뮤지엄 앞 코너를 돌아올 때까지 머릿속에서 나의 다른 자아들이 싸운다.
그냥 걷자. 걸어도 돼. Vs 이제 정말 다 왔어. 끝까지 달리자.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라는 이성적인 생각은 지금이라도 걸을까?라는 즉흥적인 생각에 아주 많이 흔들린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 결승점 피니시 라인이 있는 뮤지엄 앞 코너를 돌기전 까지 아주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잠시 걸을까?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안다고 한들 옆에 걷는 사람도 많은데 누가 뭐라고 할까? 그냥 걸을까?
그렇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무는 동안 코너를 돌고 결승점 100미터도 남지 않았다. 결승점이 드디어 내 눈앞에 보이고 응원하는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성이 들리는 순간 머릿속에서 터보 부스터 스위치가 켜진다.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같던 탱크 밑바닥에 새로운 탱크가 연결된 것 같았다. 나 이렇게 빨라도 되나 하는 착각을 할 정도로 내 의지와는 다르게 오른발과 왼발의 빠르게 움직인다.
마지막 100미터를 전력질주로 들어온다.
She believed She could so She did.
그녀는 할 수 있다고 믿었고, 해냈다.
마치 내가 필라델피아를 배경으로 한 마라톤 영화의 주인공인 것처럼 나 혼자 달리는 것 같은 착각과 슬로 모션으로 지나가는 마지막 순간은 레이스가 시작되고 제일 빠르게 지나갔다. 앞뒤가 달라서 시작과 끝이 달라서 다행인 순간이다. 그리고 생각해 두었던 세리머니를 하면 들어왔다. 달. 렸. 다.
하프마라톤 13.1 마일, 21.1 킬로미터 1시간 55분 28초
힘들었다. 하프마라톤을 달리고 힘이 들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 같다.
그리고 아침 10시에 세상에서 제일 시원하고 맛있는 맥주를 마시며 좋은 가을날을 좋은사람들과 함께한다.
같이 힘들게 달렸기에 아마도 오래 기억에 남을것 같다.
나만의 속도로 나의 가을은 이렇게 지나간다.
덧. 첫 레이스 기념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스타팅 라인 앞에서 있던 친구들은 엘리트 선두 그룹과 달리게 되었고, 그녀가 출발하고 나서야 번쩍 드는 생각 아 앞이 선두 그룹이었지…1 마일을 5분 안에 뛰는 엘리트 선두그룹과 첫 레이스를 시작하게 된 그녀는 그렇게 퍼스널 베스트 PB를 달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