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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INA Nov 19. 2021

오르막길은 힘들다.  

아직은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듯 조용한 일요일 새벽, 어둠을 뚫고 나간다. 10월의 마지막 날, 미국 아이들의 의미 있는 명절, 할로윈아침이기도 하다.

좁게만 보이던 길이 조금씩 넓어진다. 하늘이 조금씩 환하게 밝아지면서 시야가 넓어진다. 정말 찰나의 시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순간이다.


많이 와봤던 동네이긴 하지만 레이스를 하러 와보기는 처음이었다. 주차를 하고, 코로나 백신 접종 카드를 보여주고, 온도를 측정하고, 마스크를 쓰고  레이스가 시작되는 곳으로 가려고 버스에 탔다. 위드 코로나 (With Corona)와 일상생활이 시작되고,

2001년 9월 11일 후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전 아주 많은 절차가 늘어났듯이,

2021년 코로나 이후 공공장소에서 많은 사람과의 일상생활에 새로운 많은 절차들이 생겼다.  


혼자서 레이스를 하러 나온 것은 처음인 거 같다.

정확히 일주일 후면 뉴욕 마라톤이다. 긴장하고 있는 어깨를 풀어줄 생각에, 조금씩 추워지는 아침 온도는 어떨까 라는 생각에, 연습 삼아 나온 5마일 거리 달리기였지만, 처음 달려보는 코스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은 기분 좋은 설렘이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어떤 신발을 신고, 어떤 옷을 입고 달려야 좀 더 편하게 달릴 수 있을까? 다음 주 마라톤 일요일 아침을 상상해본다. 정말 꼭 일주일 남았다.


아주 진지하게, 성실하게 몸을 푸는 사람들, 뒤에 조용히 서서 내 주위를 한번 둘러본다. 마스크를 끼고  레이스를 기다리고 있음에도, 눈에 반짝반짝거림이 흘러내린다. 다들 달리기에 진심이다.

드디어 레이스 시작! 처음엔 천천히 달리기 시작한다. 레이스를 달릴 때 혼자서 페이스를 지키며 달릴 때랑 다르다. 옆에서 달리는 사람들 때문에 오버페이스로 뛰어나가기 쉽다.  


시작 한지 얼마 안 돼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 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  - 오르막길 (정인)


너무 꼭 맞는 가사에 실소가 터진다. 맞아 딱 이 부분부터 이지, 웃음기 사라지고 있다.  

오르막길, 가파른 것을 알면서 맨날 당한다.

오늘 처음 만난 새로운 오르막길도, 주말마다 오래 달리기를 하는 그곳에 오르막길도, 달릴 때마다. 힘들다.

오르막길은 힘들다. 쉬워지지 않는다.

오르막길은 원래 쉬운 것이 아니고,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오르막길을 달릴 때 쓰이는 근육이 있고,

내리막길을 달릴 때 쓰이는 근육이 있다.


어떤 근육들을 잘 단련해서 다치치 않고 아프지 않고 무사히 잘 달릴 수 있을까?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잘 달리기 위해서는 오르막 달리기 훈련, 내리막 달리기 훈련이 필요하다.

제대로 달리지 못한다면 무릎, 허리 등 통증이 생길 수 있다.

좋아하는 달리기를, 건강하기 위해서 달리는 일을 오래 즐기지 못할 수 있다.


몸의 근육을 키우며 마음의 근육도 같이 키워 나간다.

오늘 올라가는 오르막길을 위한 마음 근육의 오르막 달리기 훈련을

내일, 어제 올라갔던 오르막길을 내려오는 오늘의 마음 근육의 내리막 달리기 훈련을,

좋은 오늘이 있어야, 또 내일이 있다.

어제를 뒤돌아 보지도 내일을 미리 보지도 않는다.

오늘만 달리고 오늘만 본다.


그렇게 오르막길을 오르고 나니, 달리기에 중반부가 지나고, 1마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에 만난 오르막길은 내리막길이 되어 나를 반겨준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다.

무게 중심을 바꿔주고, 내리막을 잘 달려 내려간다.

오르막길이 힘들지만, 오른다.

내리막길의 앞모습이기 때문이다.

전속력으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꾸준함이 재능인 오늘의 나에게 말한다.

한걸음을 옮기고,

한 문장을 써가고,

하루를 지켜내고,

한 장을 채워가고


 오늘 내 앞에 오르막길을 천천히 꾸준히 오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Ranor Run 5 Miles (8.047km) 42분 27초 페이스 8'30

Radnor Run (10/31/2021)  @seinap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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