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국
일주일에 닷새는 밤을 새웠다. 아예 안 자는 건 아니고 주중 10시간 정도를 쪼개 자곤 했다. 학부 3학년 때였나? 하도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과제가 있을 때는 자주 그랬다. 특별히 열심히 사는 학생이라 그런 건 아니다. 오전부터 낮까지 수업, 저녁에는 아르바이트, 알바 끝나고 집에 돌아와 과제를 시작하니 자연스레 그런 패턴이 되었다. 전공에 따라 그게 프로젝트든 연습이든 페이퍼든 일하면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밤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비슷한 패턴일 텐데, 나의 경우 밤샘 작업은 주로 디자인대 스튜디오나 집 식탁에서 이루어졌다.
며칠 밤을 새우다 보면 몸이 부위 별로 나뉘어 따로 노는 느낌이 든다. 정신은 깨어 있는데 손이 졸 때도 있고, 입으로는 음식물이 들어가는데 위장이 작동을 멈추는가 하면, 어느 날 한 번은 알바하는 식당에서 주문을 받고 계산하다가 (말도 건네고 돈도 받았지만 머리가 잠드는 바람에) 손님이 낸 것보다 더 많은 거스름돈을 내준 적도 있다. 다행히 그 손님이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주냐며 바로 알려 주어서 곤란은 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학교에서 밤을 꼬박 지새우고 수업 전에 잠깐 씻으러 집에 들렀는데, 마음만 먹으면 쪽잠을 잘 수 있는 애매한 시간이 남아 고민이 들었다. 사실 그럴 때는 잠들면 일어나지 못할 확률이 너무 높아서 자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꼭 그런 고민을 한단 말이지. 그러다 결국 정신이 들었는지, 차라리 밥을 해 먹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마늘은 늘 구비해 두는 재료였고, 당시 감자, 양파, 냉동해 둔 밥과 닭고기가 조금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좀비 같은 몸짓으로 닭고기를 꺼내 해동하고 채소를 씻어 썰었다. 주로 뼈 없이 손질된 닭고기를 사서 소분해 두고 썼기 때문에 그날도 적당히 해동한 후 국물과 함께 떠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냄비에 넣었다(아마 그랬을 거다, 과정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감자와 양파는 된장찌개 끓일 때처럼 깍둑썰기. 다져서 랩 위에 펼치고 초콜릿 긋기(?) 처리 후 냉동해 둔 마늘도 한 조각. 닭은 살코기 조각인 데다 많지도 않아서 익히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감자가 포근포근해지고 양파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끓인 후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춰 완성.
깨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라는 코렐 그릇에 아무렇게나 담아 전자레인지에 데운 흰 밥 위로 뜨끈한 국물을 부었다. ‘빨리 먹고 학교 가야지’라는 마음뿐이어서 주방에 그대로 선 채 한술을 떴다.
‘오. 좋다. 맛있네. 이래서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 하는 건가.’
그런 새삼스러운 감상이 머릿속을 채워 나갔다. 그렇게 서서 밥을 만 닭고깃국 한 그릇을 비우는 동안 나는, 손과 입과 위장이 차례로, 궁극에는 정신까지 비로소 다시 깨어나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그날을 떠올리며 닭국을 끓인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며칠 간의 수면부족으로 인한 피로를, 이참에는 장염으로 쫄쫄 굶은 허기를 회복해야 한다는 점. 한국 스타일에 맞게 뼈째 조각내어진 볶음탕용 닭 한 마리로 재료가 업그레이드되었고 생강 한 톨에 쪽파도 한 줄기 있으니 아마 국물 맛은 이번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 참, 또 하나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며칠 밤을 새워도 다시 살아지는 20대를, 이제는 어쩌다 하룻밤만 새워도 내일이 (자느라) 사라지는 30대를 보내고 있다는 점. 하지만 똑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력이 쇠하니 닭을 끓여 먹자 생각이 든 건.
몸에 좋은 약재나 오래 고아 우려낸 진국까지 필요도 없다. 평범한 재료로 적당히 끓인 닭국이면 된다. 귀찮음과 고단함을 조금만 이겨내고 냄비를 불에 올릴 만큼의 기운이면 된다. 아, 물론 재료는 기분 좋은 날의 나를 구슬려 미리 저장해 두도록 하자.
Se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