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마특선 1] 웃으며 인사할 수 있기를

호텔 마카다미아 특선 1 - 유러피안 해물찜

by 세상 사람


만일 내가 글을 쓴다면 술 예찬이거나, 단골 술집 자랑이거나, 술친구들과의 일화라거나, 여하튼 글쓴이가 얼마나 술을 좋아하는지 누가 읽어도 알 수 있는 그런 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무슨 명목으로든 벌어진 술자리는 끝까지 지키는 게 인간의 도리라 믿고 살았으며, 인터넷에서 ‘남은 술 활용법’ 같은 문구를 보면 ‘술이 어떻게 남지? 부족하다면 모를까’ 하며 이해를 못 하던 나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알코올 라이프 1년 남짓, 이제 그런 글은 강 건너 얘기가 됐다.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 중에서 그 어느 것을 미리 알거나 확신하겠냐만은, 금주만큼은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없을 일이라 자만하던 때도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스스로 가장 놀랐다. 술 없이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예상과 달리 이렇다 할 금단 증상이 없다는 사실에 한 번 더. ‘우리 사이, 겨우 이 정도였나? 그 긴 시간 대체 무얼 위해…….’ 같은 허무감마저 든달까.








같이 살고 있는 N과 나의 술자리는, 여느 주당들의 그것처럼 “딱 한 병만”에서 시작해 “각 일 병은 해야지”로, “안주가 남았네”를 지나 “왠지 아쉽다”를 넘어, 결국에는 또 “해 뜬다”를 종착역으로 삼고는 했다. (N과는 음악 하다 만난 사이인데, 같이 공연을 해 보자며 만난 첫날부터 합주보다는 술로 단결이 된 기억이 있다.) 숙취로 인해 직립보행이 어려워지거나 대판 싸우기라도 한 다음 날이면 “이제 우리 술 좀 줄이자.”라는 의미 없는 약속을 곧잘 나눴지만, 다음날의 N과 나는 다시 새로운 사람이 되어 새로운 술을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거의 동시에 술을 끊기로 했다. 각자의 오만 가지 사정에도 사직서 퇴직사유란에는 하나같이 ‘일신상의 이유’ 따위를 적 듯, 두 애주가의 금주 계기는 ‘건강상의 이유’ 정도로 해 두겠다.

아무튼 이러한 배경 덕에, 우리 두 사람이 해 먹는 많은 음식이 안주에 기원을 두고 있다. 뭐, 꼭 술이 목적이었다기보다는, 수육을 삶는데 막걸리를 굳이 안 마시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하는 순수한 마음이 컸다(아님). 그러다 보니 저녁 장을 볼 때는 메인 메뉴와 그에 어울리는 음료(술), 또는 마시고 싶은 음료와 어울리는 음식(안주), 디저트로 마실 음료(술), 음료가 남으면 곁들일 스낵(안주)의 기준으로 구입 품목을 정하는 일이 잦았다.

그렇게 여러 주종과 안주의 조합을 탐험하다가 간혹 각별히 성공하는 음식은, 호텔 마카다미아*의 대표 메뉴로 정착했다.


* N과 내가 살고 있는 집의 별칭으로, 언젠가 나눴던 ‘나중에 우리가 차릴 호텔 이름을 뭘로 하지’라는 다소 허황된 대화에서 발췌해 붙인 이름.


[호텔 마카다미아 특선메뉴] 코너에서 첫 번째로 소개하려는 ‘유러피안 해물찜’ 역시 우리집의 스테디 메뉴 중 하나다. 우리 둘 다 유럽대륙에는 아직 못 가 봤으나 이름만은 이렇게 붙여 보았다. 화이트 와인(우리는 소비뇽 블랑을 가장 좋아했다)의 안주에서 유래했지만, 알코올 없는 저녁 식탁에 올리기에도 손색없는 요리다.








재료와 조리법은 아주 간단하다. 찜에 넣을 주재료—해물과 채소, 기본양념 다섯 가지—버터, 마늘, 양파, 요리술, 후추—만 있으면 끝. 해산물과 채소(보통 브로콜리를 쓴다)는 깨끗이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준비하고, 팬에 녹인 넉넉한 버터에 다진 마늘과 양파를 볶는다. 마늘은 편으로 썰어도 괜찮다. 마늘과 양파가 노릇하게 익은 팬에, 씻은 주재료를 넣고 요리술(화이트 와인이나 청주 등)을 살짝 끼얹어 뒤적여 준 다음 뚜껑을 덮는다. 재료에서 나오는 수분으로 찌다가 해물이 탱글탱글 익으면 후추 뿌려 마무리. 이 과정은 늘 비슷하고 때에 따라 재료만 변주하면 되는데, 시도해 본 주재료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바지락+주꾸미+새우 / 브로콜리
동죽+갑오징어+새우 / 브로콜리
키조개 관자+주꾸미+홍합 / 브로콜리
주꾸미 / 브로콜리 / 모짜렐라
갑오징어 / 브로콜리+감자 / 레몬 슬라이스+파마산

가끔 집에 있는 치즈와 레몬을 넣어 풍미를 더하기도 하고, 해물과 버터 향이 고스란히 밴 국물에 마늘바게트를 찍어 먹거나 삶은 스파게티 면을 넣어 볶아 먹기도 한다. 기호에 따라 바질이나 파슬리를 추가하면 더 향긋하다.








‘안주’의 사전적 정의는 ‘술을 마실 때에 곁들여 먹는 음식’, 한자를 찾아보니 ‘按 누를 안, 酒 술 주’를 쓴다. 함께 먹음으로써 술의 기운을 눌러 준다는 의미일까? 나는 같은 글자를 써서 ‘술 생각이 나지 않게 눌러 주는 음식’이라는 뜻으로 써야겠다. 혹시 아직 못 잊은 거냐고 묻는다면, 완전히 보내 주지는 못한 것 같다고, 함께라서 즐거웠고, 내가 많이 기댔노라고, 언젠가 다시 만나면 웃으며 인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Seine


keyword
이전 03화한겨울의 알배춧잎에도, 솎은 채소의 어린잎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