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알배춧잎에도, 솎은 채소의 어린잎에도

by 세상 사람


신문지로 잘 싸여 있던 알배추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빠는 달구어진 불판에 고기를 올리고, 엄마는 주방에서 쌈장이랑 이것저것 반찬을 내오셨다. 언니와 내가 미국으로 떠난 지 1년 8개월 만의 첫 한국 방문이었다. 아빠는 서울 외곽 자그마한 주말농장에서 상추를 비롯한 각종 쌈채소와 열무, 배추 등을 키우셨는데, 그 배추 역시 가을에 수확한 김장배추였다. ‘너희 오면 맛보게 해 주려고 남겨 놓았다’ 던 배추는 노랗게 옹근 속을 품은 채 베란다에서 한겨울을 나고 있었다. 그 겨울방학, 참 많은 걸 먹었지만 그날 먹은 알배추 쌈이 유독 뇌리에 남는다.








우리집은 쌈과 친하다. 어린 시절 살던 서울 상도동 집은 퍽 낡고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앞마당에는 꽃과 과실이, 뒤뜰에는 채소밭이 있는 흔치 않은 구조였다. 동네 어귀에서부터 보이는 키가 큰 은행나무를 따라 언덕배기로 올라가면 길가에 주욱 코스모스가 늘어선 좁은 길이 나 있고, 보도블록이 두열로 이어지는 그 길을 따라 들어가면 등나무 넝쿨을 지붕 삼은 하늘색 대문이 나온다. 들장미, 나팔꽃, 맨드라미, 개나리, 복숭아나무, 대추나무, 딸기, 산딸기, 돌나물, 호박, 열무. 그 대문 안에는 전부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의 꽃과 나무와 풀이 함께 살았다. 그 덕에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 치고는 땅에서 자라는 갖가지 식물을 늘 가까이서 보고, 집에서 기른 채소를 맛 볼 기회가 많았다.

워낙 어릴 때라 그때 기억의 많은 부분이 뭉텅하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생히 재생되는 순간이 있다. 볕이 따사로운 주말, 뒤뜰의 수돗가, 고전적인 버건디 색깔의 큰 ‘다라이’(우리집에선 ‘다라’라고 불렀다), 한쪽에 수북이 쌓인 솎은 채소. 다라에 물을 받아 온 가족이 함께 어린 채소를 씻는 것이 우리집의 물놀이였다. 작은 열무 뿌리를 커다란 고무통 수영장 물에 퐁당 담갔다 빼는 것을 일컫는 우리집만의 전문 용어(a.k.a. 아기 잠수)가 있었을 정도.


대문 앞에 내놓은 쓰레기 더미를 뒤로 하고 그 집을 떠나던 날, 더 좋은 집(아파트)으로 간다는 엄마 아빠의 말에도 몰래 눈물을 꾹꾹 참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는 단지 익숙한 친구들과 동네를 떠나는 이사가 아니라, 못생긴 딸기가 익던 꽃밭과 벌레 먹은 무잎이 춤추던 뒤뜰의 채소밭, 달큼한 향기를 풍기며 담장을 뒤덮는 넝쿨장미와 온 마당에 쿠린 열매를 떨구던 은행나무, 마당 한쪽 녹슨 철봉에 매달린 그네와 무릎까지 쌓인 눈을 굴려 만든 향나무 잎 눈썹의 눈사람까지, 그 안에서 일어난 유년의 모든 신비로운 시간과의 작별이어서였을까.








2010년 미국 생활을 완전히 접고 귀국해 부모님과 다시 함께 살게 되었을 때, 당시까지 주말농장을 이어 오시던 아빠 덕에 ‘솎은 채소’와 재회했다. 열무와 상추가 자라기 시작하면 깨끗이 씻긴 여린 잎들이 냉장고를 채우고, 그 잎들은 쌈이 되었다가, 나물이나 김치, 비빔밥이 되었다가, 샐러드와 부침개가 되기도 하면서 연일 식탁을 풍요롭게 했다.


맛이 연하고 질감이 부드러운 어린잎은 어떻게 먹어도 맛있지만, 그중 제일은 역시 쌈이라 하겠다. 고깃집에서 나오는 손바닥 크기 이상의 완제품(?) 상추에 싸 먹는 쌈과는 사뭇 다른데, 우선 잎이 작아 상추, 열무, 쑥갓 등 작은 잎 여러 장을 겹쳐 어느 정도 면적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면 아삭함은 배가 되면서도 씹는 맛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다. (그런 쌈을 먹는 기간에는 식당에서 나오는 상추에는 손이 잘 안 간다.) 쌈이라고 하면 고기가 주인공이라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각기 다른 여린 채소의 은은한 향을 제대로 느끼려면 고기 없이 밥과 쌈장만 넣기를 추천한다. 양념간장이나 젓갈도 좋다.








쌈은 그 자체로 풍성하지만 나에게는 더 특별하다. 뭐가 되었든 손으로 직접 만드는 일명 DIY를 좋아하는 성격 때문인가, 한 가지만 먹기보다는 서로 다른 맛의 조화를 찾는 쪽을 먹는 즐거움으로 삼는 취향 때문인가. 요리조리 이유를 갖다 붙여 봤는데 아무래도 ‘기억’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이 오늘에야 든다.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꿈에서나 가끔 찾아가는 옛날 상도동 집의 기억. 그 안의 꽃, 나무, 풀, 그리고 우리 식구. 나머지 수십 년의 인생을 사는 동안 필요할 때마다 끌어다 쓰는데도 아직 허물어지지 않은 그 집이 내게 남긴 행복이, 한 겨울의 알배춧잎에도, 솎은 채소의 어린잎에도 조금씩 포개어져서 나를 지탱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Se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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