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정말 다 먹어도 되나요

미음

by 세상 사람


96시간. 태어난 이래 가장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보낸 시간. 2012년 이른 봄 한 병실에서 나는 그런 쓰잘 데 없는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어떤 목적으로든 단식해 본 적이 없는 평범한 사람에게 그 나흘은, 그리고 닷새째 되는 날 눈앞에 펼쳐진 첫 병원식은, 다른 어느 범상치 않은 식탁과 별미보다 가슴 깊이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 아랫배를 쿡쿡 쑤시는 가벼운 통증이 있길래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주말을 맞았는데, 이틀 사흘이 지날수록 아픈 부위와 정도가 점점 커졌다. ‘흔히 맹장염(이라 부르는 ‘충수염’)은 다리를 못 굽힐 만큼 아프다고 하지 않았나?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도 혹시 모른다는 걱정으로 일요일 밤 미리 짐을 챙겼다. 내가 기억 못 하는 아기 때 입원한 적이 있다는 엄마의 얘기만 들었지, 내 발로 병원에 입원하러 걸어 들어가기는 처음이라 이것저것 되는대로 한 짐을 싼 것 같다. 세면도구, 노트북, 이어폰, 일기장, 펜은 물론이고, 잘 안 읽혀서 미뤄 두었던 책 한 권에 곰인형까지.

월요일 아침부터 여행자라도 된 듯 배낭 하나를 매고 종합병원 안을 이리저리 돌며 검사를 받았다. 꽤 일찍 갔는데도 가정의학과, 채혈실, 영상의학과, 소화기내과 등을 거치다 보니 진료 마감인 저녁 6시가 돼 버려, 결국은 응급실로 보내졌다. 응급실에서도 대여섯 의사 분들의 손길을 거쳐야 했고, 하필 오른쪽이라 충수염일 수도, 그게 아니면 산부인과 질환의 가능성도 있다던 나의 아픔은 드디어 게실염이라는 진단을, 그리고 통증보다도 대기 번호표와 궁금함에 더 지쳐 가던 나는 항생제 주사와 함께 입원 권고를 받았다. 그제야 나의 배낭이 빛을 발할 시간이 온 것이다.

입원 기간 동안에는 금식과 항생제 치료를 하며 경과를 지켜볼 거라고 했다. 수술 가능성은 낮아서 통원 치료를 할 수도 있지만 귀가하면 제대로 금식하기 어려우니 입원이 좋겠다고, 의사 분의 정확한 말을 빌자면 “집에 가면 매운 거 짠 거 막 먹을 거잖아요.”라고. 하긴, 평소에 식탐이 별로 없는 편인 나도,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병원 1층 식당에서 선택한 점심메뉴가 ‘짜장면’이었다. ‘입원하면 이제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될 텐데, 이 중에 가장 기름지고 자극적이고 안 건강해 보이는 메뉴로 먹자’는 게 선택의 기준이었다. 하아, 인간의 욕망이란. 배가 아파 병원에 갔으면서.








금식 기간에는 팔에 꽂은 파인애플 환타 색깔과 우윳빛의 수액으로 영양을 보충했고, 물조차 마실 수 없었다. 거듭 말하지만 평소에 먹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고, 고기든 치킨이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니던 나였다. 끼니때 배가 고파지는 게 너무 귀찮아서 알약 같은 걸로 때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하지만 한 끼, 두 끼, 세 끼... 금식이 계속될수록 그동안의 나의 언행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이틀 째, 병실의 전선이나 링거 튜브, 이어폰 할 것 없이 모든 줄이란 줄이 면발로 보이기 시작했고, 가져간 일기장에 ‘옆의 환자가 꼬깔콘을 먹었다. ‘꼬깔콘’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씹는 소리와 냄새만으로 꼬깔콘임을 알 수 있었다’ 따위의 글을 적어댔다. 금식 76시간 만에 첫 물을 마실 수 있게 됐을 때는, 일회용 봉투 형 종이컵에다 냉면을 그려 넣고 그 컵에 물을 따라 마시기도 했다. 먹는다는 건 단지 입과 소화기관만의 일은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금식을 통해 온몸으로 다시 깨달아 가고 있었다.

오감의 자극은 물론, 무얼 먹을지 떠올리는 설렘, 요리조리 음식을 담거나 집어 올리는 행위, 같이 앉은 사람과 먹는 동안 나누는 말과 눈빛, 다 먹은 후 느껴지는 충족감과 나른한 기분까지, 그 모든 과정이 ‘먹는다’는 것임을.








금식 96시간 경과. 첫 식사로 미음이 나왔다. 흰쌀 미음과 맑은 국,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생긴 두부 한 조각, 투명한 물김치 국물, 오렌지 주스 한 캔에 떠먹는 딸기맛 요거트까지. 수액으로 영양공급을 다 받고 있었는데도 눈앞에 차려진 성찬을 보니 뭉클하다 못해 눈물이 날 뻔했다. ‘이걸, 정말 다 먹어도 되나요?’ 하는 공손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침대 주위의 커튼을 다 치고 벅찬 감정을 가다듬은 뒤 경건하게, 하지만 흐뭇하게 첫 술을 떴다.

아는 맛인데도 새롭고, 담박한데도 입맛을 당겼다. 입술에 닿는 단단하고 미끄러운 숟가락, 입안을 감싸며 흘러들어 목을 타고 내려가는 감미로운 미음, 이와 혀의 협동으로 서서히 으스러지는 향긋한 두부……. 여기까지의 자극은 너무 강렬해서, 다음 날 식단이었던 죽과 고등어구이, 장조림의 기억보다도 훨씬 큰 감명으로 남아 있다. 긴 시간 먹지 못한다는 게 정신과 육체를 얼마나 황폐하게 하는지, 온 감각을 얼마만큼 곤두세워 놓는지, 무언가를 위해 식음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큼 절실한 결의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죽으로 몇 끼를 더 진행하다 다시 속을 비우고, 마지막 내시경 검사로 게실의 염증이 나았는지 확인한 후에야 퇴원을 했다. 팔에 꽂힌 바늘의 이물감. 다른 환자의 앓는 소리. 딱딱한 이불의 무게에 잠 못 들던 며칠 간의 불편함. 소화기 질환에 위장을 비우듯 마음의 병 역시 아무 감정도 담지 않음으로써 낫게 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 다음에 또 입원할 기회가 있다면 그때는 수건하고 슬리퍼를 잊지 말자는 다짐. 이 모든 걸 뒤로 하고 집에 돌아온 것은, 길을 나선 지 약 177시간 만이었다.








지난 주말, 동네에 새로 생긴 횟집에서 회를 사다 먹은 N과 나는 사이좋게 식중독에 걸렸다. 그날따라 햇볕에서 유난히 여름 냄새가 난다 했더니, 부쩍 올라간 기온에 음식이 잘못되기라도 한 걸까. 우리는 술도 끊었고 건전하게 새우튀김과 회만 먹었는데 정말이지 억울했다. 아플 때 챙겨 줄 사람이 있다는 게 누군가와 같이 살면 좋은 점이라고들 하지만, 둘이 동시에 아프니까 서로 목소리로만 상태를 확인하다시피 했다. 가까스로 병원에 갔다 와 물과 약만 먹으며 기어 다니다가 꼬박 24시간을 날려 보냈다.

조금 먼저 기운을 차린 나는 일어나자마자 화분에 물을 주고 미음을 끓이기로 했다. 누워 있는 내내 지난주에 사 와 종이봉투에 담은 채 주방 한편에 둔 햇감자가 자꾸 아른거렸던 터라, 감자 미음으로 마음을 굳혔다. 한쪽 냄비에 껍질을 까고 닭볶음탕 썰기(?) 한 감자 한 개를 삶고, 다른 쪽에는 찹쌀가루 한 줌을 찬물에 풀어 끓였다. 젓가락이 쑥 들어갈 만큼 익은 감자를 체에 밭쳐 으깨 찹쌀 미음에 합체시키고, 물을 부어 저어가며 한소끔 더 끓였다. 다 끓은 미음에 뭉친 찹쌀가루가 없도록 한 번 더 체에 내려 그릇에 담았다.

N과 마주 앉아 각자의 그릇에 이유식만큼씩의 감자 미음을 덜어 천천히 먹었다. 퀭해진 우리는 감자가 세상에나 이런 맛이었다고, 미음 한 입, 감탄 한 입을 번갈아 했다. 입원 때에 비하면 굶은 시간이야 현저히 짧지만, 독소를 배출하느라 에너지를 다 쓴 데다 파인애플 환타 색깔이나 우윳빛 수액의 도움도 없어서인지 이번 미음 또한 꽤나 임팩트가 컸다. 게다가 내가 끓인 감자 미음을 먹고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 N을 보니 과연, 긴 공복 기간 이후 미음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Se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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