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찌개
나는 ‘좋아한다’는 말에 엄격한 편이다.
된장찌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고 언제든 끓일 수 있으니 익숙한 음식일 뿐. 식당에서 스스로 된장찌개를 주문해 본 일이 내 기억에는 없는데 그럼에도 잊을만하면 반드시 먹게 되는 메뉴이기도 하다. 고깃집 서비스로나 백반의 일부로 흔히 딸려 나오니까.
밖에서 뿐 아니라 집에서도 종종 먹는다. 고추장은 있다 없다 하는 반면 된장은 언제나 냉장고에 구비되어 있는 양념 중 하나인데 그야 수육 삶을 때나 나물 무칠 때, 쌈장 만들 때도 필요해서지 꼭 된장찌개를 끓이려고 사 두는 건 아니다. 손수 끓인다고 해도 자주 ‘-나’라는 보조사를 붙인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는데 된장찌개'나' 끓여 먹을까?”처럼.
된장찌개는 아무거나 넣고 대강 끓여도 어느 정도 맛이 난다. 냉동실에 항상 있는 멸치와 다시마에, 무나 말린 표고가 있다면 같이 우려내어 된장과 다진 마늘을 풀고, 때에 따라 고춧가루나 고추장을 나중에 좀 넣는 것으로 국물은 끝. 건더기는 호박, 양파, 감자 같은 기본 채소나 버섯, 두부, 우렁, 해물, 소고기, 돼지고기 등 그날그날 내키는 재료를 적당히 골라 넣고 끓이다가 어슷썰은 파와 고추로 마무리를 하면 된다.
그런데 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된장찌개를 대충 끓이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반복해 왔기에 모든 과정이 손에 익어 수월할 뿐. 뚝배기에 맛국물을 우린 후 멸치를 건져내고, 채소는 국물과 같이 떠먹기 좋은 크기로 맞춰 썰어 넣고, 너무 짜거나 싱거워지지 않도록 된장의 양에 신경을 쓰고, 식탁으로 옮길 때까지 뚝배기의 남은 열에 재료가 좀 더 익을 것을 감안하여 미리 불을 끄는 이 일련의 절차를, 차곡차곡 행한다.
보조사 ‘-나’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마음에 차지 아니하는 선택, 또는 최소한 허용되어야 할 선택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때로는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면서 마치 그것이 마음에 차지 않는 선택인 것처럼 표현하는 데 쓰기도 한다.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면서 마치 그것이 마음에 차지 않는 선택인 것처럼’이라니. 된장찌개를 향한 내 마음을 들킨 것만 같다.
된장의 짭조름함과 양파의 달금함이 섞이며 자작해진 국물 맛을, 그 국물이 구석구석 밴 보드라운 두부와 몰씬한 애호박의 식감을 좋아한다. 차돌박이면 차돌박이 바지락이면 바지락, 재료가 무어든 어우러지고 마는 된장의 포용력을 좋아한다. 뚝배기에 바글바글 끓인 된장찌개만이 풍기는 푸근함을, 밥 위에 덜고 품위 없이 비벼 한술 푸지게 떠야 제맛인 편안함을 좋아한다.
이 좋은 것들을 만끽하려고 된장찌개나 끓여 먹자고 말하는 것이다.
갑자기 조금 미안하다. 좋아한다는 말은 특별하고 귀한 것에, 대체 불가능한 것에만 쓰느라 아껴 왔는데 이제 보니 된장찌개가 충분히 그래 왔지 뭔가.
Se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