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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벨의 생각: 만남으로 이루어진 인생의 터닝포인트


   나의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언제인지 한번 되새김질해본다. 헤벨의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무수한 만남 안에는 비밀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내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 헤벨의 인생도 달라진다. 누구의 인생이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의 만남을 통해 헤벨의 생각, 인생의 방향,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는 계기들이 있었다. 

    첫 번째 인생의  만남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5월쯤이었다. 영어시간이었으며,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우리 반 영어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대다수의 아이들이 좋아했던 선생님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얼굴도 예쁘시고, 온화한 모습으로 항상 친절하게 학생들을 지도하신 분이셨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잘난 부모 밑에서 평온한 가정에서 자라고 재정적인 뒷바라지도 받아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교사라는 좋은 직업도 얻으니 성격이 저렇게 좋을 수밖에..’ 하는 내 나름대로 영어 선생님의 성장 배경을 만들면서 내가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는 열등감의 스토리를 만들곤 했다., 


    영어수업 시간은 나에게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유는 잠이 잘 오는 시간이었고 선생님이 잠자는 학생들을 악착같이 깨우시지 않으셨다. 창문에 비치는 봄 햇살을 보면서 책상에 누워있을 때, 영어수업을 마치는 종이 치자 선생님이 갑자기 칠판에 'innocent'라는 단어를 쓰시면서 모든 학생들 앞에서 " 은주야, 선생님은 너를 볼 때마다 이 단어가 생각이 나네. 너무 순수한 매력에 빠질 때가 많단다. 선생님은 은주의 잠재력을 믿어." 하시면서 나가시는 것이었다. 모든 반 아이들이 나를 부럽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시선보다는 나는 도대체 모르는 영어 단어를 칠판에 쓰시는 선생님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다. 도대체 'innocent' 단어의 뜻이 뭐냐? 내가 모르는 단어를 왜 칠판에 쓰고 난리야?’ 혼자 토털 대면서, 우리 반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반장한테 달려가서 " 반장아!, 저 단어가 무슨 뜻이냐?" 하고 물었고 공부 잘하는 반장의 답변은 이랬다. " innocent라는 단어는 형용사로 순결한, 청순한, 천진난만한, 무지한, 악의 없는 등의 뜻을 가지고 있어. 너는 좋겠다. 선생님한테 이런 단어도 듣고" 공부 잘하는 반장이 나를 부러워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모습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나는 그때 반장이 불러주었던 여러 가지 의미 중에서 오로지 '무지한'이라는 단어만 내 머리에 꽂혔다. 처음에는 선생님의 말씀이 '무지하고 모자라니 공부를 해보라는 말인가?'라는 생각에 화가 났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말 내게 잠재력이 있어 보이기는 한가?, 선생님이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처음으로 나 자신에 대해, 내 미래에 대해, 현재 학교 성적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그때부터인지는 몰라도 나의 무지함을 탈출하기 위해서 공부라는 것을 해보았고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영어 공부도 영어 선생님이 나에게 던진 화두 " innocent"라는 단어 덕분에 영어 공부도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나에게 던져주었던 단어의 의미보다는 세상에 누군가는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나라는 존재에 대해 신뢰를 하고 나를 지켜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누군가 나를 믿어주니 나도 노력하면 잘 될 거라고 믿음이 생겼다. 더욱이 나를 믿는 단 한 명의 사람에게 실망을 주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공부라는 것을 고등학교 2학년 말쯤부터 시작한 것 같다. 그렇게 나에게 영어 한 단어로 나에 대해 성찰해 보게 했던 선생님은 내가 고 3 때 학교를 관두시고 호주로 유학을 떠나셨고, 그 이후로 어떻게 지내는지 들은 적이 없다. 하지만 나를 믿어주었던 단 한 명의 선생님으로 인해 현재의 나라는 사람의 일부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곤 한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문제 청소년들은 자신을 좀 바라봐 주고 관심을 가져달라는 의미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이나 편견의 방어기제로 위악을 행하고 있을 수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의 믿음, 지지와 관심일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영어시간에 선생님에게 관심받고 싶어서 엎드려져서 자고 있었던 헤벨처럼 말이다. 

                                    © headwayio, 출처 Unsplash


   두 번째 인생의 만남은 헤벨이 27살이었다.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다니고 있던 회사를 관두고 1년 정도 병간호를 하였지만 아버지를 멀리 보내고, 다시 재취직을 하려고 하니 단절된 이력,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헤벨은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나? 인생이 무엇인가? 하면서 희망 없는 삶을 이어간 적이 있었다.  


   지방대학교 학원 앞에서 토익강사를 하면서 나머지 인생을 뭐 하며 살아야 할까? 고민하면서 대학생들에게 토익이나 토플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스킬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수강생 중에 대학교 2학년인 여학생 1명이 있었다. 조용하고 성격도 좋아 보이는 무엇보다도 수업을 한 번도 빠지 않았다. 그 학생이 항상 팔 옆에 끼고 다니는 개론서가 있었다. “ 특수교육의 이해 ”,“특수교육 방법 ” 등의 책 들이었다. 처음에는 “특수”자가 붙어서 도대체 특수전공은 무엇을 배우는 것인지 궁금했다. 


   어느 날 수업이 마친 날 우연히 팔 옆에 특수라는 이름이 붙은 개론서를 끼고 다니는 여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 특수교육이 어떤 분야를 공부하는 학과예요?”라는 나의 질문에 여학생은 ' 장애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이며, 장애의 영역이 10가지 정도 되는데 그 장애영역에 따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방법 등을 배우는 교육이다.'라고 말해주었다.    장애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특수교육 개론서를 며칠만 빌려달라고 해서 집에서 개론서를 읽기 시작했다. 흥미 있었다. 장애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하는지 궁금했다. 

    나의 친언니도 경도의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다.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특수교육 개론서를 보면서 나의 둘째 언니도 지체장애에 속하기는 했다.  특수교육을 전공한다는 여학생과 수업이 끝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여학생은 미국으로 유학 가서 특수교육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특수교육에 관심을 보이니 그 여학생이 어느 날 자신의 학교의 특수교육과에서 편입생을 뽑는다는 리플릿을 가지고 와서 나한테 특수교육을 공부해 보기를 권했다.  특수교육과 편입생에 관한 리플릿 한 장이 나의 진로를 완전히 바꾸었다. 특수교육과 여학생의 이 가져다준 리플릿을 보고 나는 인생의 방향 키를 ‘특수교육’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학원에서 만났던 온화한 미소를 가진 특수교육과 여학생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특수교육에 무엇인지도 모르고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 여학생과의 만남이 특수교육이라는 새로운 분야로 나를 이끌어주었고 나의 인생의 목표를 가지게 해주었다. 

   헤벨은 생각한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결정된다. 어떠한 부모를, 어떠한 스승을, 어떠한 친구를, 어떠한 배우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은 그 모습이 바뀐다. 헤벨이 이루는 인생은 그 만남의 연속적 결과이며, 인생의 퍼즐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호승 시인의 [위안]이라는 책에서도 사람과의 인연, 만남의 중요성이 언급되어 있다. 

대부부의 사람들은 오늘 우리의 삶이 만남의 결과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특히 20대 때의 만 남이 한 인간의 일생을 결정지어버리고 만다는 사살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감각하다. 올바른 만남, 진실한 만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얼마만큼 중요한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 정호승의 '위안' 책 중에서 -


    20대뿐이겠는가? 30대, 40대 그 이상의 나이 듦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다양한 형태로 우리는 진정한 스승을 만날 수도 있고, 진정한 우정과 마주할 수도 있으며,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날 수도 있다. 

   헤벨도 고등학교와 20대에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배웠고, 인생을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웠다. 

   우리 인생에서 무수히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에서 우리가 누구를 친구로, 스승으로 선택하는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부모는 내가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지만 다행히 친구, 스승이나 배우자들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누구를 선택하고 누구를 만나는 좋은 만남을 위한 선과제는 우선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헤벨은 코스모스가 피어나는 들길을 걸으며 오늘도 좋은 만남에 대해 간절히 기도해 본다. 진실되고 아름다운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헤벨이 좋은 사람이 되기를 꿈꿔본다. 삶의 크기는 꿈의 크기라도 누군가 이야기했다. 꿈꾸고 노력하면 삶에서 원하는 그 무엇도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새벽 아침에 헤벨은 기도하며 꿈꿔본다. 

좋은 만남을 통해 헤벨의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난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만남이 되어 누군가에게  터닝포인트를 주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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