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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벨의 단상: '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를 읽고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손에 들고 읽게 된 책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강신주, 지승호 저)이다. 

바람이분다, 살아야겠다. 저자: 강신주, 지승호 발매 2022.3.5.

 

배운다는 것은 무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그 안에 콘텍스트가 많이 들어있는 거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표현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가 글을 잘 쓰거나 말을 잘해서라고 생각하지만 콘텍스가 많이 들어 있어서 오해 없이 설명을 해서예요. 텍스트가 던져졌을 때는 콘텍스트까지 이해하라고 요구하는 거예요. 우리는 텍스트에 집착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SNS 가 발달하면서 문장이 짧아지면 콘텍스트를 찾아내기 힘들어요. 자기가 이해되는 어떤 하나의 대목, 불쾌했던 단어 하나만 써도 바로 공격을 해요. 이제는 콘텍스트를 찾으려고 노력을 할 만큼의 애정도 없는 거죠.  -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강신주, 지승호 저)


   배운다는 것은 사람의 무늬를 이해한다는 말이 좋다. 

콘텍스트를 찾아보니 사물이 서로 잇닿아 있는 관계나 연관이라고 나와있다.

사람의 텍스트를 이해하려면 텍스트를 잇는 관계나 연관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타자를 이해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 사람이 처한 콘텍스트를 찾아보면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 일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계는 언어나 말이라는 텍스트에 국한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타자의 언어에 내포되어 있는 콘텍스트를 찾아내려면 그 사람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나에게 누군가의 콘텍스트까지 찾아내려는 인내와 용기가  부족함을 느끼니 사람관계가 쉽지 않다. 

인생은 주관식인 것 같다. 객관식처럼 여러 선택지가 있어 마음이 편하게 한 가지를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명확한 답을 요구하기에 힘들어지는 것 같다.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한다. 그것이 옳은 결정이든지 잘못된 결정이든지 말이다. 사람과의 관계, 시간과 공간도 주관식처럼 보인다. 몇 줄 안되는 질문지에 답을 할 줄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은 고통의 완화, 잠시 동안 고독이 사라지고 배고픔도 가시고 신체의 불편함도 줄어들고 근심과 걱정도 가시는 상태니까요. 바람에도 비에도 애달프게 꽃잎이 흔들리니 그만큼 이제 타자의 움직임에도 민감하기만 해요. 자신의 고통과 쾌락에만 매몰되는 이기적 개인이 더 이상은 아니죠. 이제 성숙한 거예요. 타자의 고통에도 민감할 수 있으니까요. 곧 지려는 찬란한 벚꽃, 미세한 바람에도 떨리는 벚꽃이 노쇠함과 죽음이 아니라 성숙함과 삶을 상징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예요. -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강신주, 지승호 저) -


    행복은 고통의 완화, 잠시 동안 고통이 사라지고 신체의 불편함도 줄고 근심과 걱정이 없어지는 상태임에 절대적 공감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삶에 여유가 있고 걱정과 근심이 없어지고 편안한 생활을 영위할 줄 알았다.  사실은 반대이다. 

   일상에서 기쁨과 행복감의 충만함보다 고통과 불만의 적음이 매일을 살아가는데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불안, 실패와 인생의 부담감으로 새로운 무엇인가를 하는데 자꾸 주저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자의 움직임에 민감하고 이기적이지 않고 누군가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로움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성숙한 삶을 살고 싶다. 헤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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