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을 거실에도 놓아보고, 베란다에게 놓아보고, 마지막에는 남편 게임방에도 놓아본다.
이유는 한 가지이다. 글을 잘 쓸 수 있는 공간을 찾아보고자 한다.
환경이라도 바꿔보면 글을 자주,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베란다에 책상을 놓아보니 주의가 산만하다. 그리고 겨울에는 추을 것 같아서 글을 쓰기가
힘들 수도 있겠다 싶다.
거실에 책상을 옮겨본다. 반려견이 자꾸 인형, 공을 물고 오니다. 글 쓰는데 집중하기가 힘들다. 이런 상황이면 글 쓰는데 집중하기가 힘들 것 같다는 핑계를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편 게임방으로 옮겨본다. 남편이 새로 나온 게임을 시작한다. 자신 게임하는데 방해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집중해서 글을 쓰는 환경과 거리가 멀다.
나의 책상을 여기저기 옮겨보아도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과 결심이 중요함을 며칠 동안 책상을 옮겨본 다음에 내린 결론이다.
인생도 이럴까? 현재 환경이 불만스러워 다른 곳으로 옮기면 조금은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가지만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환경도 똑같은 가시밭이며, 자갈밭일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지동설을 주장하기보다는 어떤 장소에서 지동설의 중심인 태양일 수도 있는 나는 주위를 밝히고 빛을 주는 보조자의 역할을 해야만이 삶이 힘들다는 생각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며칠 동안 책상을 옮겨보고 철학자가 된 것 같다. 내가
나의 책상의 마지막 종착역은 거실로 정해졌다. 추운 환경보다는 따뜻하고, 남편의 컴퓨터 키보드 소리보다는 새근새근 코 고는 반려견이 있는 장소가 정감 있고, 글도 써질 것 같다.
추석이라고 대부분 고향으로 부모님 혹은 친인척을 만나뵈러 고향으로 향한다. 나는 친정 부모님도, 시댁 부모님들 모두 계시지 않다. 누구는 편할것 같다고 하지만 실상 나는 명절만 되면 쓸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