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는 행복은..

나라는 인간은 공무원이나 관료적인 시스템에 살아가기에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인간이다.

윗분들 모시는 의전에 충실하지도 못하고,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말이나 아부를 하지 못한다. 젊은 시절에는 학생들의 수업을 등한시 한 선배에게 "왜 그따위로 뿐이 못 가르치느냐고? 세금이 아깝다고 소리친 적이 있으며(교만하고 오만했던 시절의 나였다.)", 싫은 사람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면 얼굴이 바로 굳어져 버리는 타고난 페르소나가 되지 못하는 인간이다.

더욱이, 승진하려면 상사동료에게 아부도 떨어야 하고 딸랑딸랑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성격으로 싫은 환경이나 편안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얼굴 미간부터 징그러워지고 묵언으로 투쟁하는 종류의 인간이 바로 나이다. 한 친구는 나의 이런 성격이 자유로운 영혼 때문이며, 다른 이는 성격이 너무 촌스럽다고도 한다.


이런 나도 관료체제 혹은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높은 자리라는 곳에 오르기 위해 촌스러운 성격을 바꾸어볼까 하는 생각에 한때는 노력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한 노력이 성공했냐고? 철저하게 실패했다. 타고난 나의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현재의 나 자신을 버리고 세상 사람이 높이 쳐주는 위치와 자리에 올라갔다면 행복했었을까요?라고 누가 나에게 질문한다면, 타고난 능력과 성격이 안되어서 가지렁이 찢어지게 조금 노력해 본 내가 감히 그 질문에 답을 하면 “ 아니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다. 각자 졸리는 대로 사는 게 좋을 것 같같은데요. 각자 삶의 방향대로 속도대로 재미있게 살면. 그러면 후회 없을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할 것 같다.


또 누가 다음과 같이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아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못해서 행복하지 않은가요?라는 질문에 나의 답은 " 차라리 중간에 관두어서 다행이다. 끝까지 나의 성격 바꾸면서 높은 곳에 올라갔으면 나라는 사람은 없어졌을 것 같습니다. " 입니다. 세상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성공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니 이런 위로적인 말을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다.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야 그래도 원하는 만큼의 위치와 부를 가져보아서 잘난 맛에 그런 소리 하는 것 아니냐고 . 나는 경기도에서도 많이 떨어진 지역에 작은 평수 아파트한 채 가지고 있고 빚도 남부럽지 않게 가지고 있는 50대 초반입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는 행복을 어떤 작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어스름 저녁노을 지는 저녁에 은은하게 부는 나른한 가을바람이 볼을 스칠 때 소크라테스, 쇼펜하우어, 루소, 니체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정신적이고 순전한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손을 잡고 걸으면 나의 몸의 60조 개의 세포 세포 하나하나가 행복이라고 외칠 것이다.”.


어스름 저녁에 손을 잡고 쇼펜하우어, 루소, 니체를 논할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 내가 말하는 행복은 유토피아란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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