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완성하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지 누군가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는 고은 작가의 ‘그 꽃’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고은 작가의 짧지만 너무도 강렬한 두 문장의 시에서 언급된 ‘그 꽃’은 나에게 어떤 것들이 있을까?
먼저, 딸아이의 유년 시절이다.
그다음은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의 시간
마지막 내가 붙잡고 싶었던 나의 꿈들
첫 번째, 나의 '그 꽃'은 딸아이의 유년 시절이다. 나의 유년 시절에 가정적으로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 사랑받지 못한 나의 내면의 아이는 세상의 자랑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직장을 갖고 박사학위도 취득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줄 알았다.
박사학위를 얻기 위해 오랜 시간 공부하고 있는 엄마 옆에서 나의 딸은 과자 한 봉지에 의지해 엄마의 공부는 언제쯤 끝날까? 하며 묵묵히 딸아이의 유년 시간을 견디어 냈고, 승진이라는 것을 위해 매일 4시간씩 출퇴근하는 직장으로 옮긴 이후 주말만 되면 소파에 지쳐 누워있는 엄마 옆에 앉아 조용히 놀고 있었던 나의 어린 딸.
나는 박사학위라는 유형물과 딸아이의 유년 시절이라는 무형물과 맞바꾸었다. 유형물의 무의미함을 깨달을 때쯤 나의 딸아이는 엄마라는 중요한 존재도 알지 못하고 사춘기로 접어들었다. 사춘기에 접어둔 딸아이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사춘기 딸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박사학위 공부했던 시간의 곱절이 필요함을 새삼 느끼고 있다. 나는 첫 번째 ‘그 꽃’인 딸아이의 유년 시절을 나의 시간을 들이고 사랑과 관심으로 지켜주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나의 인생에 놓친 두 번째 ‘ 그 꽃’은 엄마와의 추억의 시간이다. 엄마는 젊어서부터 실제적인 가장 노릇을 하며 여섯 명 자식들 먹여 살리기에 바쁘셨다. 남들처럼 엄마를 모시고 여행이나 맛집을 찾아다닐 인생의 여유라는 것이 생길 때쯤 엄마의 몸은 여기저기 삐거덕 거려서 걷지를 못하게 되셨다. 내 인생에서 엄마와 함께한 여행에 대한 기억도 없다.
엄마를 모시고 멋들어진 식당을 갔었지만 남편과 싸우는 모습으로 더욱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한 기억뿐이 없다. 참 못난 딸이었다. 지금이라도 엄마와 추억여행을 해보면 늦지 않았다고 누군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그토록 시간을 함께 하고픈 엄마가 계시지 않는다. 엄마는 항상 내가 가고 싶으면 그 자리에
계실 줄로 알고 있었던 나는 참으로 어리석었다.
나의 ‘그 꽃’의 마지막은 나의 꿈이다. 젊은 시절 한때 하고 싶었던 나의 꿈은 ‘내일, 나중에, 내가 여유가 생긴 10년 후, 생활에 안정이 찾아오면’하고 미루었던 것들이다. 생계형으로 선택한 나의 밥벌이는 안정을 주었지만 마음 한편에 나만 아는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자리는 아마도 ‘놓쳐버린 나의 꿈’ 일 것이다.
친구가 가끔 "너 같은 자유영혼의 소유자가 이런 공직사회에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라고 의아해하면 나고 말하고 싶다.‘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 나도 잘 모르겠다고.’라고말이다.
삶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은 게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정재찬 교수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면서도 나의 마지막 ‘그 꽃’ 이었던 꿈들이 자주 그립니다.
이제는 인생 전반 전에 놓쳐버린 ‘그 꽃’들로 슬퍼하기보다는 인생 후반전에 올라가면서 꼭 보고 싶은
‘그 꽃’들을 찾아보고 싶다.
‘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으로부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찾아봐
야지 삶의 목표가 생길 것 같다.
수동적으로 누군가로부터 ‘ 지금이라도 당신의 삶의 목표를 찾아보세요!’라고 하면 나의 후반전의 삶의 목표를 이런 문장으로 말하고 싶다.
" 세상 사람의 이목과 평가로부터 자유롭고 욕심을 버린 나 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싶어요.
감사함의 마음으로 심금을 울리는 글을 쓰고 세상 사람들 소통하고 싶어요. 글로 소통
하다 보면 어느 누군가에게 마음의 위로와 도움을 줄 수 있는 넉넉한 품성의 소유자가
되어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