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들은 지방대에 대한 무시를 겉으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어떤 통념이 자리 잡고 있다. 그 통념은 서로를 소개하거나 할 때, 상대의 대학 이름을 듣는 순간 작동한다. 무의식적으로 '아, 제는 공부 얼마나 안 했으며 저 대학을 갔지? 그런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네!'라는 식의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생각을 전제해둔 상태에서 비로소 묵묵히 열심히 살아가는 지방대 친구에게 공감할 뿐이다. 그 친구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회적 압력이 좀 심한 거 아닌가 하는 고민에서
출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오찬호 저)
땅덩어리도 작은 대한민국에만 있는 대학들. 수도권 대학, 지방대학, sky 대학.
나는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거대한 나라라면 지리적으로 조금 구분해놓았다면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작은 나라에서 말도 안되는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을 구분해놓고 청춘들을
힘들게 하는지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곤한다.
오찬호 작가의 위의 글을 읽고 지방대생이었던 나의 에피소드가 생각나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우리 집에서 대학교를 들어간 사람은 작은 오빠와 나뿐이었다. 내가 다녔던 대학교는 지방대학교이다. 지방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에서는 대학이라는 문턱을 밟은 사람이라서 나라는 존재는 '유식하고 똑똑한 사람' 으로 통했다. 그만큼 나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지방대 졸업할 때쯤 세상의 냉혹한 차별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지방 대학생들의 취업문은 매우 좁았다. 사회적인 시스템상에서 만들어놓은 서열이 매겨진 대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소위 우수한 학생들이고 똑똑한 대학생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인간'을 세상에서 똑똑하고 크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언니와 엄마 때문에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서 취업 준비를 열심히 하였다. 그 당시만에 해도 알아주는 기업에 필기시험 서류를 접수하기 위해서 새벽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이메일 접수가 가능하였지만 회사 구경도하고 싶어서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그날 엄마는 새벽 5시에 기차역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 직장분들께 인사 잘하고 친절하게 대해라. 그리고 마음 굳게 먹어라 ". 필기시험 보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마치 시험을 보러 가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23살의 나는 키도 작았지만 경험도 적은 작은 존재였다. 서류 접수하고자 하는 기업을 찾는 데 반나절 이상이 걸렸다. 지하철도 복잡했고 서울 거리와 사람들이 생소했다. 서류 접수가 먼저라고 생각해서 점심 먹을 생각도 못 했다. 오후 3시가량에 간신히 회사에 도착하고 서류 접수하는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는 2분의 남자분이 앉아계셨다. 한 분은 40대 초반으로 보이시는 중년 남자, 한 분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분이셨다. 서류를 제출하자 40대 초반의 중년 남자분이 나의 서류를 한번 보시고 나를 힐긋 쳐다보면서 " 지방대생들도 우리 기업에 시험을 보려고 하네. 우리 기업이 그렇게 우습나? " 하시는 거였다. 옆에 동료에게 하는 말 같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지방대라는 무시를 받은 나는 그 자리에서 소리치고 싶었다. ' 지방대생은 시험도 못 보나요. 기회는 균등하게 줘야지 않나요? 지방대라고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되는 것 아니예요!' . 하지만 나는 조용히 돌아섰다. 새벽의 엄마의 당부의 말과 점심도 굶은 나는 말할 기운도 없었다.
그날 집으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속으로 외쳤다. '나를 뽑지 않은 당신의 기업은 언젠가는 망할 겁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다니.. 당신들만 손해요. 그리고 사람을 대학교, 외모 등으로 평가하는 직원이 있는 기업이 잘 될 일이 없을 거야. 두고 봐라 누가 잘 되는지 말이다. '
예상했듯이, 나는 서류 전형에도 통과하지 못했고, 시험 볼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서류 넣었던 기업은 그 후 10년 후에 기업 부실로 망했다.
나에게 잔혹했던 ' 지방대생 차별'의 경험은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지방대라는 라벨이 우리 사회에서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었던 것 같다.
TV 혹은 유튜브에서 취업으로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 취준생들의 생활과 브이로그, 취업에 실패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젊은이에 대한 기사를 접할때 마다 이런 사회를 만든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취업으로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참고 견디면 잘 된다, 아프니깐 청춘이다. 열심히 하면 다 된다. 노력한 만큼 결실이 있다 ' 등의 희망고문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광화문 길거리에 각종 정당들이 서로를 비방하는 말들, 혐오스러운 문구로 가득 차고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플랭카드가 걸려진 밑에서 서로를 쓰다듬고, 키스하는 젊은이들이 있기에 '우리나라는 아직 희망이 있다'라고 말한 김훈 작가의 말을 나도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