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뜨겁지도 않게, 차갑지도 않게
슬럼프가 꽤 길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를 돌이켜보면, 지치지 않고 오래가려면 너무 뜨겁지도 않게, 차갑지도 않게 조절해야 한다. 시즌엔 하루 평균 6시간씩 운동하고 비시즌엔 휴일 반납하고 2~3시간씩 식단과 운동을 병행했다. 하지만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처럼 멘탈이 나가는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처음엔 운동하는 것 자체에 즐거움을 느꼈고 그 열정 하나로 대회도 여러 번 도전했는데 언젠가부터 타인과 비교를 하면서 운동이 부담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 남들이 하는 것 그 이상의 노력을 해야 입상을 할 수 있었으니까. 운동을 하고 나면 성취감을 느껴야 하는데 자책을 한 적이 더 많았다.
그래서 하나에만 매몰되는 것은 정신적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시 내 분야 외에 다른 분야는 인정하지 않았고, 한 가지 방식만 오랫동안 고집했다. 이런 부분이 누군가를 가르칠 때 걸림돌이 되었다. 나에게 수업을 받는 사람들이 웨이트만 배우려는 게 아닌데, 평소 기능성운동이나 서킷트레이닝 등등 운동을 다양하게 한 적이 없어서 트레이닝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나 역시 한 가지 운동만 하면서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착하면서 기능성 트레이닝, 코어강화, 이완스트레칭과 같은 운동들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대근육을 발달시키면서 코어근과 협응근들을 같이 강화시켜야 하는데, 한쪽으로 치우친 운동은 결국 밸런스를 무너트려 잦은 부상과 통증에 시달렸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운동 5년 차에도 코어운동을 진짜 못했던 시기도 있었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은 쉬운 운동부터 다시 시작하면서 작은 성취부터 쌓아가는 것이다. (막상 해보면 쉽지 않다는 걸 느끼고 교만해진 나를 반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내려놓는 게 생각보다 힘들더라.
나에게 맞지 않는 훈련방식도 슬럼프의 원인이 되었다. 어떤 선생님을 만나서 3개월 동안 운동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이분이 하라는 대로 2~3주 간격으로 밴딩로딩을 하면서 철저한 식단관리를 했다. 아몬드 한알까지도 기록할 정도로 철저하게 칼로리 계산을 하면서 먹었다. 이 선생님은 식단이 70% 운동이 30%를 좌우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은 반대였다. 식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신진대사가 활발해서 쉽게 배고픔을 느끼는 편이다.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에 운동할 때 칼로리 소모량이 높은 편이어서 남들보다 많이 먹어야 운동 퍼포먼스를 제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 그리고 워낙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식욕을 억누르며 사는 게 나에겐 곤욕이었다. 육체적인 스트레스 못지않게 정신적 스트레스도 장기간 지속되면 치명적이다.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음식에 대한 강박증이 심해졌고, 날뛰는 식욕을 정상으로 되돌리는데 6개월 정도 걸렸다. 그래서 지금은 운동과 식단을 다양하게 시도하면서 나에게 맞는 방법들을 재정립하고 있다.
슬럼프에 빠졌다고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높은 산에 올라가던 중 넓은 고원을 만났다고 생각해 보자. 어쩌면 슬럼프가 나를 지키는 방패가 될 수도 있다.(누구나 슬럼프는 한 번씩 겪으면서 이 구간을 지나야 하는 시기가 반드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