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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eaSeJin 코리아세진 Nov 09. 2018

아카시아, 달리기, 글

2016년 5월 10일 

 가슴이 답답하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는 꼭 하는 활동이 있다.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뛰고 또 뛰어서 땀을 한바탕 흘리거나, 폐가 터지거나 팔이 끊어질 것 같을 때 까지 수영을 하거나 뭔가에 홀린 듯이 글을 뽑아낸다. 온 몸에 힘이 빠져버린 순간에, 정신은 되레 오롯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며 시야는 또렷해진다. 갖은 핑계를 갖다 붙이며 관심 한번 받아보려는 알량한 나의 껍데기를 털어버리고자, 오늘, 달리기와 글을 선택했다. 


 매년 5월, 우리 집 뒷산(앵봉산)에서는 어마어마한 아카시아 향기가 쏟아져내려온다. 

고3시절 야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 맡던 아카시아 향기는 할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사관생도 시절, 1주일에 한 번 집에 올 때 가끔 씩 맡던 아카시아 향기는 무엇이든 견뎌낼 수 있다는, 견뎌내야 한다는 ‘인내’ 였다.

 장교 시절, 몇 번 맡을 수 없던 뒷산 아카시아 향기는 ‘간절한 향수’였다. 최전방 철책선에서 소대원들과 함께 맡던 아카시아 향기는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강원도 고성 산골짜기의 암흑과 고독 속에서 맡던 아카시아 향기는 ‘꿈의 사무치는 눈물’이었다. 강원도 원주에서 맡던 아카시아 향기는 ‘기존의 나를 넘어서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이제 민간인이 된지 두 달 반이 됐다. 어김없이 아카시아는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고 세상 낮은 곳으로 그 향기를 뿜어 보낸다. 마침 하루 종일 내린 하늘 물 향기와 뒤섞인 그 향기는 어둑한 그림자를 타고 가슴 한가운데를 관통한다.  


 아카시아 향기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꽃을 피우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아픔이 있고 눈물도 많을 거다. 외롭고 고독한 손을 누군가 먼저 잡아주기만을 바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영혼이라도 내가 피워낼 꽃의 향기를 맡아준다면 나는 이 세상, 의미 있게 살았노라 이야기할거다. 


 물집이 터지고 삭신이 쑤셔서 뛰는 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뛰다가 혼절해 쓰러진 적도 있었고,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은 더위와 추위를 참아냈고, 수면부족의 극한 1년을 참아냈고, 가눌 수 없는 시간의 무게를 부여잡고 목숨을 지켜낸 때도 있었다. 지금의 고통과 고뇌는 과거에 참고, 참고 또 참아온 것에 비하면 참, 가당치도 않은 일들이다. 


 담담한 마음으로 굳세고 바르고 총명하게 한 걸음 내딛자. 내가 “나”로써 오롯이 존재하고,‘너’도 “나”로써 존재할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 먼저 하기를 기다리기보단 내가 먼저 나아가자. 그래서 나의 “나”와 ‘너’의 “나”가 하나 되는 날이 올 것을 믿으며, 공감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며 성찰하자... 알량한 자존심일랑 버리고 깊은 바다 속에서 유유히 노니는 저 흰수염고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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