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일 @서강대학교
조성환 교수님의 배려로 학기 중간에 합류해 청강한 한국철학특강수업은 내겐 혁명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2016년 전반기, 장교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나는 건명원에서의 수업과 다양한 독서, 문화 활동을 하면서 대한민국은 독립국가가 아니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한 몸 내던져 나라를 지키겠다며 군인도 되었건만 내 나라가 독립국이 아니라고 말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물론 겉으론 주권을 지닌 독립국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진정한 독립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진정한 독립국가라면 국가의 운명을 외세의 간섭 없이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위협을 받으면 적극적으로 대응할 힘을 지녀야 한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과연 우리가 독립성을 지닌 적이 있는지 찾아보기 힘들다.
애처로운 현실을 마주하기 거북하고 애써 외면하고 싶지만 그것은 현실도피이자 자기기만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독립하지 못 했을까? 다양한 논증이 펼쳐질 수 있겠지만 그 귀결점은 결국 ‘생각이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것에 이르게 된다.
선진국이 되기를 바라면서 정작 우리 것에 소홀한 우리나라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각계분야에서는 현안마다 일종의 사대주의가 팽배해있다. 특히 국가의 근간인 국방에 있어서, 전시작전권을 환수하는데 의지가 있는 장성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학계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아슐리안 도끼는 숭상하면서 우리 땅에서 나온 구석기시대 주먹도끼는 바라보지도 않는다. 고대 그리스어, 샘족어, 히브리어, 라틴어는 그 근원까지 깊이 들이파면서 훈민정음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석학들이 한국의 현실을 진단하기 위해 적용하는 사고의 틀은 서양과 중국의 그것이다. 또한 너나할 것 없이 문제의 근본을 알아내려는 노력보다 주변의 눈치를 보고 트집 잡기에 바쁘고, 제 밥 그릇 챙기기에 눈이 뒤집혀있다. 이승만 선생이 110여 년 전 옥살이를 하며 쓴 「독립정신」에서 나열한 부끄러운 자화상들이 지금 시대에도 별반 다를 바 없음에 소름 돋는다.
독립 혹은 주체적이지 못한 이유에 접근하는 다양한 실마리를 한국철학특강수업에서 얻을 수 있었다. 한반도에서 자생한 동학사상이 민중을 깨우치며 전국으로 뻗어나간 것을 배우며, 주체성과 독립에의 열망과 가능성을 실감했다. 외세개입과 기득권의 탄압으로 동학운동은 그 뜻을 이루진 못했지만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사상’ 그리고 ‘우리 것’에 대해 접근한 시간들은 적어도 내겐 혁명적인 배움이었다. 특히 한국 근대인문학 전반이 다카하시 도루 등의 일본인에 의해 체계가 세워진 사실과 일본이 우리사회 곳곳에 뻗힌 마수를 직간접적으로 의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1853년 페리제독으로부터 시작된 대격변의 시기에, 일본을 지금으로 이끈 사상을 집약하고 제자들을 길러낸 요시다 쇼인이라는 인물에 집중해야 할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밀려오는 파도에 따라 부평초처럼 떠다니기만 하는 대한민국은 바람과 조류순환 그 너머의 태양의 작용까지 바라보지 않는다면 영원히 독립할 수 없을 거다. 개인 하나하나가 주체적인 사고를 갖고 삶을 누리며 주체적으로 험난한 앞길을 헤쳐 나가는 대한민국을 꿈꾼다. 그 것은 어느 누구도 아닌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안개에 걷혀있던 문제의식의 핵심은 바로 ‘나’에게 집중하지 않는 나. ‘대한민국’에 집중하지 않는 대한민국 이었다. 이것을 깨닫게 해준 조성환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몇 년 전부터 거의 매일 생각하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문구를 다시금 되뇐다. 현실에 대한 갑갑함과 분노 그리고 문제의식을 긍정적인 동력으로 승화시키며,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
우리 가운데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이
왜 인물이 될 공부를 하지 않는가?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자가 되라.
- 도산 안창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