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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Pak Feb 16. 2018

20180213 안 올 것 같던 그날이 왔다.

오늘은 아이들이 졸업하는 날. 

 시간이 참 빠르다. 개학을 한 게 어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다. 우리 학교는 개학식과 졸업식 사이가 2주 반 정도로 다른 학교에 비해 기간이 긴 편이다. 그래서 진도도 거의 끝났고 2주 동안 뭘 하며 보내나~ 싶었는데, 이게 웬 걸 오히려 할 건 많고 시간에 쫓겼던 2주였다. 하루하루 시간이 안 가는 듯하더니 일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그렇게 졸업식 날이 되었다. 


 오늘 아침 교실문을 가장 먼저 연 사람은 역시 나였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내가 가장 먼저 와서 다행이다. 교실 불도 켜놓고, 난방도 해놓고 준비된 모습으로 학생들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실문을 열고 잠깐 어디 다녀온 사이에 아이들이 많이 왔다. 여자애들이 교실 가운데에 모여서 옹기종기 뭘 하고 있다.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선생님, 우리 선생님한테 편지 쓰고 있어요~~! 짱이죠!"


우리 반의 붙임성 최고 서희가 내게 편지 쓰는 걸 자랑하며 얘기한다.


"응? 편지~~?! 웬 편지야~~"


 알고 보니 수인이가 아침에 편지를 쓰려고 편지지를 가져왔고 편지지가 넉넉한 참에, 수인이가 편지를 쓰겠다는 말에 우리 반 모든 여자아이들이 몰린 것이다. 내심 무슨 내용을 써줄지 궁금하다. 남자아이들은 장난치며 마지막 날을 만끽하고 있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1년 동안 고생하며 쓴 독서기록장에 대한 시상을 했다. 우리 반은 내가 틈을 주지 않고 쓰게 했나 보다. 22명 중에 약 18명 정도가 독서상을 받았다. 이어서 3월 초에 만든 꿈 풍선을 나눠주고 통지표를 나눠주었다. 통지표를 받자마자 학생들은 자기가 '잘함이 몇 개인지'를 센다. 반대로 '노력 요함'이 몇 개나 나왔는지 세는 녀석들도 있다. 그리곤 마지막에 내가 써준 행동발달의견 영역을 본다. 이 쫑알이 부분(행동발달의견 영역)이 통지표의 하이라이트다. '활기찬 성격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음.', '정리 정돈이 필요함.' 등과 같이 선생님이 자신을 1년 동안 지켜본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아이들끼리 서로의 쫑알이를 바꿔가며 본다. 


"아, 야 이거 봐. 난 무슨 양보가 필요하대! 내가 얼마나 대중교통에서 할머니께 양보를 잘 하는데. 이제부터 양보 안 해(뾰루퉁). 너는 무슨 모범생이네 모범생이야~~"


 자기랑 친구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자기 쫑알이에서 유독 안 좋은 내용만 눈에 띄나 보다. 그동안 학급에서 지낸 걸 생각하면 잘 해왔던 부분도 분명히 넣어주었는데 칭찬에 인색한 나 자신이 반성된다. 


 우리 반 넘버원의 투정이다. 통지표를 나눠준 뒤, 교실에서 더 이상 필요 없지만 동생이 있는 아이들이나 본인에게 필요한 문구류 나눔을 했다. 정말 이것저것이 나왔다. 학습 준비물 여분으로 남았던 공책들, 연필, 구글 카드보드 등등. 한창 나눔을 하니 교실이 정신없어지고 어느새 졸업장 갈 시간이 다가왔다. 제대로 인사를 건네지 못한 것 같아 내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운을 띄웠다. 


 "중학교 가면 교실에 아는 얼굴도 있고, 모르는 얼굴도 있겠지. 누구랑 밥 먹을지, 같이 다닐지. 이게 제일 걱정되지? 특히 멀리 가는 친구들을 더더욱 그렇고."


 아이들은 중학교가 설레면서도 두렵다.


 "맞아요~~! 애들끼리 무리가 있어요. 서로 얼굴 아니까 이미 있는 무리들. 그럼 그 무리에 끼기가 진짜 어려워요."


너무나 어수선한 분위기여서 몇 명이나 새겨들었을지 모르지만 꼭 하고 싶었던 말을 전했다.


 "그럼 여러분이 그 무리 속에 있을 때, 다른 친구들을 잘 챙겨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반끼리는 서로 다른 친구가 곤경에 처했을 때 꼭 도와주면 좋겠어요."


 어디선가 '방관자'라는 말이 들렸다. 왕따를 염두에 두고 한 말 같았다. 


 "얘들아, 방관자도 안 돼. 친구의 편에 서면 좋겠어."


  말을 하며 아차! 싶었다. 내 입으로 얘기하지 않고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이 생각하고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게끔 했어야 했는데... 꼰대스러운 도덕적인 이야기가 이성적으로는 맞지만 과연 감성적으로도 와 닿았을까 싶다. 아이들도 머리로는 알고 있는 내용이었을텐데 '왜 그래야 할까'에 대해 같이 깊게 생각하기보단 일방적인 조언이 된 것 같다. 후, 이런 걸 보면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마지막 날은 차분히 보내고 싶었는데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교실 정리를 하다보니너무 정신이 없다. 게다가 아이들이 그간 궁금해했던 나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카톡으로 게임초대를 하지 말라는 얘길 하고나니 어느새 졸업식장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우리반 아이들에게 여운을 주는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 한 것 같다. 6학년은 처음이라 마지막까지 서툴다. 


 졸업식 장에서는 그 간의 활동 영상, 졸업장 수여, 후배 학생들의 송사영상, 우리 아이들의 답사 영상, 부모님께 편지 읽어드리기, 졸업식 노래 부르기, 마지막 담임과의 시간이 주된 식순이었다. 

 졸업상 수여를 하며 학생 한 명, 한 명과 악수나 포옹으로 축하의 말을 전해주었다. 아이들에게 진심이 담긴 말들을 전하고 싶었는데, 무슨 말을 건넸는 지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단체사진도 한 장 찍지 못하고 휘리릭 졸업식이 끝나버렸다.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못한 것 같아 지금도 아쉽다. 눈물이 날 틈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나의 첫 6학년 담임은 끝이 났고 꼬맹이 같던 우리 반 아가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떠났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새 출발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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