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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Mar 10. 2020

디저트로 '한잔' 생각날 때 사바랭

단맛과 술의 부적절한 만남이 빚은 결과는?

작년 말 상하이 여행을 갔을 때 깜빡 잊고 못 먹은 음식이 있다. 바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다.

내 식성을 대충 아는 사람들은 무슨 중국까지 가서 하겐다즈를 찾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상하이에서 먹고싶던 하겐다즈는 한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레어템, 럼레이즌이다.


한 20여년 전만 해도 럼레이즌 아이스크림은 베스킨라빈스나 하겐다즈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찌 된 일인지 좀처럼 파는 곳이 없다. 일본과 중국에선 꽤 흔한 아이템인데도 말이다.

이건 어쩌면 술과 단 것을 상극으로 여기는 우리나라 문화 탓이 아닐까...추측을 잠시 해봤다.

아니, 그보다는 미성년자에게 생각 없이 팔기 쉬운 '디저트'에 술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문제겠지만..


하지만 의외로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는 디저트, 특히 케익류 중에는 술이 들어간 것이 상당수 있다.

파운드케이크가 대표적이며 술을 넣는 목적은 주로 향을 내거나 날달걀 비린내를 없애는 것이다.

대체로 디저트에 쓰이는 양주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럼주인데, 그나마 우리나라 빵집에서는

제대로 된 럼주 대신 싸구려 캡틴큐를 쓰는 일이 적지 않았다고...쿨럭~


애들도 먹는 과자에 술이 쓰인다니 걱정하는 어른들도 있겠지만 오븐에 들어가면 알코올은 날아가니

취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열로 익히지 않는 럼레이즌 아이스크림이나 아예 럼주 시럽에

흠뻑 적셔서 만드는 사바랭 같은 경우는 진짜로 디저트 먹다 취하는 일이 가능하다...

또 럼레이즌만큼 한국에서 먹기 힘든 디저트 중 하나가 바로 사바랭, 혹은 바바오럼이다.


프랑스의 유명 셰프이자 미식가인 브리오 샤바랭의 이름을 딴 이 디저트는 여러 모로 색다르다.

우선 분류상 '과자'가 아닌 '빵'에 속한다는 점에서 특이성을 갖는다. 케이크 반죽은 이스트 발효를

하지 않고 굽지만 사바랭에 쓰이는 생지, 브리오슈는 발효로 부풀리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

수분이 날아갈 정도로 바싹 구운 브리오슈에 럼주가 섞인 시럽을 콸콸 붓고 생크림과 과일을 곁들인다.


사바랭이란 디저트를 알게 된 것은 오래 전 만화 '아빠는 요리사'를 통해서였다.

아들 마코토의 여친 사나에가 모처럼 가져온 바게트가 딱딱하게 굳어버리자, 일미씨는

바게트를 시럽에 적셔 촉촉하게 만든 사바랭으로 변신시킨다. 그리고 사나에는 마코토에게

볼뽀뽀를 하고 떠나지만 정작 시럽에 취한...마코토는 기억을 못한다는 슬픈 에피소드..

넷플릭스 드라마 '세일즈맨 칸타로의 달콤한 비밀'에도 바로 이 사바랭이 등장한다.

주인공 칸타로의 정체를 의심하는 여직원 도바시가 어느날 부장과 외근을 가게 되고,

요코하마에서 추억 속 사바랭을 먹으며 천공의 성 라퓨타를 체험하는 병맛스러운 장면을 연출한다는..

(사실은 이 드라마 자체가 만화 원작이어서인지 변태+병맛 코드가 철철 넘쳐 흐른다...)

달콤한 시럽과 생크림에 술이라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조화는 일본인들이 흔히 '어른의 맛'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맛의 세계를 선사한다. 이걸 보면서 갑자기 또 나는 럼레이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고 혹시

서울에 사바랭을 파는 디저트 카페가 한군데는 있지 않을까 폭풍검색을 했지만 실패...ㅠㅠ

기왕 이렇게 된거 몇 번 실패한 이스트 발효를 다시 한번 실습하는 셈 치고 조만간 잠자고 있던

미니오븐을 꺼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사바랭에 대한 나의 한마디: 부적절한 만남일수록 달콤하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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