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농민신문' 연재 칼럼으로 아래 링크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662/0000051813
[맛있는 이야기] 무화과
열매 안에 핀 작은 꽃 과육 형성
8~11월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
얼리면 톡톡 터지는 식감 살아나
생으로 먹거나 잼·과실주 활용
항산화성분 풍부 다이어트 도움
역사적으로 유명한 미인에겐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먹은 음식이나 미용 비법이 전설처럼 함께 전해진다. 당 현종의 후궁 양귀비가 열대과일인 ‘리치’를 즐겼다고 하는 것처럼 고대 이집트 군주인 클레오파트라도 사랑한 과일이 있었는데 바로 무화과다. 대식가로도 알려진 그는 수십개의 무화과를 앉은 자리에서 먹어 치웠고, 그 모습에 연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반했다고 한다.
무화과에는 실제로 항산화 효과를 내는 폴리페놀, 각종 비타민과 소화 작용을 활발히 해 다이어트를 돕는 펙틴 등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동의보감’에도 “맛이 달고 식욕을 돋우며 설사를 멎게 한다”고 언급돼 있다. 다만 무화과는 오랫동안 한국인에게 낯선 과일이었다. 18세기에 청나라를 방문한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꽃 없이 열매가 달리는 이상한 나무가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조선왕조실록’이나 고조리서에선 무화과에 관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한반도에도 그 당시 남부 해안가를 중심으로 무화과가 자생하고 있었다. 전남 영암의 무화과는 대한민국 지리적표시 품목으로 당당히 등록돼 있다. 그런데도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제철이 짧은 데다 과육이 무르고 상하기 쉬워 다른 지역까지 유통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재배가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 무렵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화과를 처음 알게 되는 경로는 아마도 성경을 통해서일 것이다. 사과로 알려진 선악과는 원래 무화과라는 설이 있다. ‘꽃이 없다’는 점 때문인지 문학 작품에서도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종종 사용됐다. 소설가 염상섭은 ‘삼대’의 후속작 격인 ‘무화과’에서 비틀어졌지만 꽃 속에서 나고 자란 부모와 달리 비틀어진 꽃마저 부재한 일제강점기 젊은층의 삶을 묘사했다. 시인 김지하도 암울한 시대를 살아내는 자신을 꽃 없는 열매에 비유한 시 ‘무화과’를 1986년 발표한 바 있다.
다만 무화과는 꽃이 없는 게 아니라 열매 속에 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는 김지하의 시에서도 언급된다. 무화과를 반으로 갈랐을 때 하얀 실타래처럼 보이며, 입에 넣었을 때 톡톡 씹히는 식감을 내는 부위가 꽃이다. 무화과와 공생하는 말벌이 작은 구멍으로 들어가 수정하며, 수정이 되지 않더라도 열매 자체는 성장할 수 있다. 수정으로 번식하는 무화과가 훨씬 맛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재배되지 않는다.
무화과는 최근에 와서야 보존 기술과 유통망이 발달돼 전국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게 됐다. 8~11월에만 나오는 별미로 시큼하지 않고 부드러운 단맛이 어르신들 입맛에도 맞는다. 냉동실에 살짝 얼리면 꿀처럼 달아지며 톡톡 터지는 씨앗이 색다른 식감을 준다. 잼이나 과실주로 활용할 수도 있고 빙수·케이크 위에 올리면 시각적으로 돋보인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식캣사인’에서는 달콤한 머랭과 생크림 위에 제철 무화과를 듬뿍 올린 ‘무화과 이튼 메스’를 맛볼 수 있다. 이국적인 별미 디저트로 입소문을 탄 장소다.
정세진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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