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한 겨울에도 뜨겁게 닿는다.
졸업을 앞둔 어느 금요일이었다. 내내 이동수업으로 진행되는 시간표 탓에, 얼굴을 마주할 일조차 없던 3학년 아이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유독 한파가 휘몰아치던 그날, 예상하지 못했던 한 아이의 고백이 체육관의 온도를 바꿔 놓았다.
수능이 끝남과 동시에 수시도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서 수업시간은 아이들에게 지루함 그 자체였다. 심지어는 학교에서 할 게 없으니 조퇴시켜 달라는 아이들도 넘쳐났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수업시간에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것은 결코 못할 짓이었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라는 것은 교사로서 더욱 못할 짓이었다. 그렇다고 창의적인 새로운 활동형태의 수업을 고안하는 것 또한 매우 큰 부담이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어느 선생님 한 분이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 계획을 이야기했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완벽히 수용하기 어려웠다. 일단 아이들을 전부 모아서 한 시간가량의 활동을 준비한다는 것은 안전에 대한 대비, 임장 지도가 필요한 일이었다. 더불어 이제 10대의 9부 능선에 있는 아이들은 더 이상 학교라는 복도를 바라보지 않았다. 눈부시게 다가올 스무 살의 설렘에 앞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교사의 활동이 유의미하면서 동시에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기가 어렵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생님께서는 사비를 털어서 한 시간가량의 이벤트를 준비했다. 내용은 단순했다. 아이들에게 마이크를 넘기고 한 해의 소회 및 아이들, 선생님에게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나와서 하는 학생에게는 소정의 기프티콘을 선물하는 것이다.
그렇게 준비한 한 선생님의 이벤트는 아이들뿐 아니라 교사들까지도 예상치 못하게 붙잡아 두는,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의 선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한 시간의 끝에서 우리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한 아이의 고백을 듣게 되었다.
마이크가 처음부터 쉽게 아이들 손에 넘어가지는 않았다. 체육관은 넓었고, 아이들은 조심스러웠다. 웃음 섞인 농담 몇 마디와 가벼운 감사 인사가 오갔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자리가 원래 기대했던 것은 이런 말들이 아니라는 것을. 마이크를 쥔 아이들은 대부분 짧게 말하고 자리에 돌아갔다.
그리고 그때 조심스럽게 손을 든 한 아이가 있었다. 평소라면 굳이 마이크를 잡지 않았을 아이였다. 앞에 나서는 일에 익숙하지도,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도 않던 아이였다. 아이의 손이 떨리는 걸 보며, 나 또한 손을 꽉 쥐었던 것 같다.
아이의 이야기는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작년에 암 투병 끝에 어머니를 떠나보냈다는 말은 체육관을 단숨에 조용하게 만들었다. 아이는 잠시 말을 멈췄고, 마이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누구도 재촉하지 않았다. 그 침묵마저 아이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집은 빠르게 무너졌다고 했다. 슬픔 때문이었는지, 돌볼 여력이 없어서였는지는 아이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저 집은 점점 더러워졌고,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그때 담임 선생님과 다른 한 분의 선생님이 조용히 집을 찾아와 청소업체를 불러 주셨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는 그 일을 도움이라는 말로 설명했지만, 듣는 사람들은 그 말이 얼마나 큰 일이었는지 알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곳을 함께 찾아주었고, 아이가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알려주었다고 했다. 아이는 그 시간들이 자신을 지금까지 데려왔다고 말했다. 힘들었지만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라고. 그리고 아이는 여전히 어머니가 많이 그립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동안 체육관 여기저기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끝내 울지 않았다. 대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다들 졸업 축하해요.”
그 한 문장에 체육관은 결국 울음으로 가득 찼다. 아이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우리는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었지만 모두 각자의 마음속에서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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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도 학교는 늘 하던 대로 돌아갔다. 종은 울렸고 일과는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 체육관에서의 한 시간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아이가 꺼낸 이야기는 누군가를 감동시키기 위해 준비된 말이 아니었고 선생님들이 했던 일 역시 특별한 일을 했다고 불리기 위해 선택된 행동이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는 그 아이의 삶이 더 무너지지 않도록 곁에 서 있었을 뿐이다.
교사는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슬픔을 없애 줄 수도 없다. 다만 아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바닥을 잠시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는 있다. 그날 체육관에서 나는 처음으로 분명히 느꼈다. 우리가 매일같이 반복하는 이 평범한 학교의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삶을 버티게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학교를 완전히 떠난 뒤에도 자신을 믿어준 어른이 있었다는 기억 하나쯤은 남기를. 그 기억이 앞으로의 삶에서 조용히 등을 밀어주기를 바랐다.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학생의 고백을 통해 교사의 역할과 한계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가지며, 일상 속에서 놓치고 있었던 책임과 의미를 성찰함. 학생이 살아갈 앞으로의 미래가 더욱 단단하길 기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