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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준희 Nov 12. 2020

협상의 정석

가격 후려치기는 언제 통할까

세입자가 초토화시킨 집을 한참 청소하고 복원하는 중이었다. 길을 가던 한 히스패닉 커플이 세를 구하는 중이라며 집을 구경해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물론이라고 했다. 쓰레기를 치우고 페인트를 칠하고 나서 집이 꽤나 멀쩡해진 후라 커플은 집을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월세를 물어봤다. 나는 전에 있던 세입자들은 2년 전에 $1850을 냈으며 앞으로 들어오는 세입자들에겐 $2000를 받을 거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남자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고 처음부터 새침한 표정으로 입장한 여자는 얼굴을 마구 찡그리며 너무 비싸다고, 자신들은 비슷한 크기의 집을 월세 $1200에 살고 있다며 $2000은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투덜댄 후에도 집의 모든 층과 구석구석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후려치기가 통하는 거래


그녀는 아마도 자신만의 협상 전략을 펴고 있었던 것 같다. 비싸서 말도 안된다며 반값이면 되겠구먼! 식으로 후려치는 협상 방법을 아마 예전에 사용해 봤을 거고 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나도 예전에는 시장 같은 곳에서 협상을 할 때 너무 비싸다며 깎아달라고 하면서 협상을 하기도 했고 그게 통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수요는 적고 공급은 많은 상황에서나 가능한 협상 방법이다. 다른 곳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을 파는 판매자 입장이라면 마진을 줄여서라도 구매자에게 팔아버리는 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시장이 정하는 '시세'


그러나 이 경우에 이런 협상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집은 싼 값으로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물건들과는 다르게 공급이 매우 한정적이라 '후려치기'가 불가능하다. 수요는 항상 있고 공급은 한정적이라 보통 부동산에는 시장이 정하는 '시세'가 존재하며, 실거래 가격은 '시세'에서 고작해야 10% 이내로 움직인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거래


이렇게 오히려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거래에서는 '후려치기'가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만 가져온다. 비슷한 크기와 상태의 집이라고 해도 도시와 동네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내 집이 그녀가 지금 $1200을 내고 살고있다는 집보다 훨씬 비싼 이유는 훨씬 안전하고 깨끗하고 조용한 동네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나서기 전, 그녀는 세입자의 신용과 연봉을 체크하는지, 그리고 $1500은 안되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렇게 물어보면서도 거만한 표정을 놓지 않았고 (여기 말고도 갈 데 많아!라는 신호를 주려고 한 것 같다) 남편은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이런 경우 그녀가 시도한 가격 후려치기는 그녀에게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나로 하여금 그녀가 이 집에 살기에는 부족한 신용과 연봉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게 했고, 그녀가 내게 월세를 제때 낼 수 없는 부적합한 세입자 후보라고 느껴지게 했다. 아마 나는 그녀와 같은 조건의 세입자 후보가 있다면 다른 후보를 선택할 것이다. 


협상의 정석


협상의 정석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거래를 제안'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공원에서 물을 한 병에 2천원에 팔고 있는 많은 상인들 중 한 명에게 가서 물을 천 원에 살 수 있냐고 제안한다면, 상인이 물을 천원 이하에 구입했을 경우 상인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거래이고 좋은 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상인은 천 원에 팔아도 마진을 남길 수 있으니 이득이고, 나는 물을 시세보다 더 싼 가격에 살 수 있어서 이득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전문 브리더가 윤리적으로 일 년에 한 번씩만 태어나게 하는 품종견 같이 공급이 한정적인 거래에서 '무슨 강아지가 이렇게 비싸! 5만원이면 되겠구먼!' 이라며 가격을 후려치면 오히려 제 값을 치른다고 해도 '팔고 싶지 않은 사람'이 돼 버릴 수가 있다.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거만한 태도보다 '강아지를 정말 원하고 잘해줄 수 있는데 돈이 없다'는 식의 불쌍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협상에 유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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