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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준희 Nov 07. 2020

집을 초토화시킨 세입자

*글의 중간에 혐오감을 유발할 수 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내 가장 큰 재산이자 첫 집의 첫 세입자가 2년 만에 나가기로 했다. 정말 착한 세입자여서 아쉬운 마음으로 집에 갔는데 착한 것과 집을 깨끗하게 쓰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집의 입구에서부터 범상치가 않았다. 깨끗이 관리되어 있어야 할 앞문 앞과 주변에 눈과 비를 맞고 눌어붙은 전단지들이 널려 있고 각종 플라스틱 껍질이 널려 있었다. 


입구에 눌어붙어 있는 전단지들. 여기서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쓰레기를 치우는 날은 수요일인데 목요일에 집 앞에 쓰레기 더미가 있었다. 


안에 들어갔더니 2년 전 400만 원 이상 들여서 전부다 흰색으로 칠한 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파란색 찰흙이 잔뜩 붙어 있었다. 사람을 불러 물어보니 하나하나 손으로 떼야한다고 했다. 수백 개를 떼려면 대체 몇 시간이 걸리는 걸까. 그리고 떨어질 때 깨끗하게 떨어지지 않아서 그 위에 특수 처리를 한 후 다시 페인트를 칠해야 한다고 했다. 일단 하루에 35만 원을 내고 떼 본 후에 더 남아 있으면 추가 비용을 지불하기로 했다.


손으로 떼어내야 하는 찰흙 풀


바닥은 보이지 않을 만큼 물건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전화해서 물어보니 이걸 치우는데 7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했다). 세입자에게 고양이가 있었단 건 알고 있었는데 고양이가 두 마리였고, 고양이 음식이 마당과 집 바닥에 열려 있고, 언제 다 먹었는지 알 수 없는 고양이 캔이 나뒹굴었다. 음식물이 집 안과 밖에 모두 열린 채로 나뒹구니 이 집에 쥐와 바퀴벌레가 살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벽에는 바퀴벌레 다리가 붙어 있었고 쓰레기 더미로 꽉 찬 지하실에서도 죽은 바퀴벌레를 보았다. 화장실 수도꼭지에서는 언제부터 그랬는지 물방울이 계속해서 새 나오고, 방들 중 하나에는 전구가 뽑혀 있었고, 문 하나는 손잡이가 뽑혀 있었다. 집에서 유일하게 깨끗한 곳은 수압이 낮아서 잘 쓰지 않는다는 1층 화장실이었다. 비록 문은 뽑혀 있었지만.  


마당 상황
냉장고


첫 집을 살 때 설레게 아름다웠던 집이 처참한 몰골로 바뀐 걸 보고 너무 절망스럽고 암담해서 주저앉아서 울 뻔했지만 운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고, 울 시간에 전화를 한통이라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만 울었다. 중간에 남편과 통화를 했는데 남편이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거면 무조건 돈을 내고 해결하고, 자신은 신경 쓰고 싶지 않으니 말하지 말라고 했다. 내 남편은 원래 문제가 있을 때 이렇게 문제에 대한 해결책만 제시하고 감정적으로는 절대 서포트하지 않는다. 서운하기도 하지만 완벽하게 이성적이고 냉정인 남편의 조언이 문제를 직시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람을 불러서 만나고, 견적을 받고, 정확히 비용이 얼마가 들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일의 순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니 암담하고 절망적이었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대책 없이 암담하고 절망적인 게 아니라 정확히 얼마만큼 절망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안 그래도 업자들과 일하는 건 비즈니스 파트너가 모두 담당해서 나도 업자들과 일하는 경험을 쌓고 싶었는데 시기적절하게 경험을 쌓을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져 준 것 같다.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좋은 기회로 삼을 수도 있겠다. 이 경험이 나중에는 웃으면서 ‘그때 집 관리에 대해 많은 걸 배웠지’라고 할 수 있는 경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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