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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반지 대신 요구한 청혼 선물

by 세준희

다이아몬드 마케팅은 지갑을 열게 하는 최고의 마케팅이다


미국에선 남자의 2달 월급이 청혼 반지의 적합한 가격이라는 말이 있다. (아직도 남녀관계에 있어서 보통 남자들이 먼저 청혼을 하고, 값비싼 다이아몬드 반지로 청혼하는 문화에 동의하진 않지만 이번 글에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중 '선물'을 가장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내가 보기엔 2달 월급이라는 엄청난(!) 액수를 지불하면서도 '반지에 쓰는 액수 = 사랑의 크기'라는 비공식 공식을 세워서 소비자로 하여금 당연하고 기쁜 마음으로 소비하게 하는 다이아몬드 산업의 마케팅이 존경스러우면서도 터무니없어 보였다. 다이아몬드는 사는 순간 가치가 반 이하로 떨어지는데, '그 가격이면 대신 XX를 사겠다'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보통 어떤 물건의 가격을 체감할 때 햄버거를 사용해서 계산한다. 월급 500만 원에 버금가는 가격 1000만 원의 반지라면 햄버거가 5천 원이라고 치고 '그 가격이면 대신 햄버거 2000개를 먹겠다'라는 식이다. 햄버거 2000개면 매일 3끼 햄버거를 먹는다면 거의 2년 동안 생존할 수 있는 액수다.


꼭 다이아몬드일 필요가 있을까


그러다 Sex and the City를 보다가 주인공 신발광 캐리가 다이아몬드 반지 대신 신발이 가득한 신발장을 선물로 프러포즈받는 장면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굳이 다이아몬드를 받기보단 자신이 원하는 걸 요청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의 남편과 결혼 전제로 사귀기 시작하면서부터 미리부터 원하는 걸 말했다.


어차피 결혼할 생각으로 만나는 사이에 프러포즈는 생략해도 되지만, 할 거라면 사는 순간 가치가 하락하는 다이아몬드 반지 말고, 100만 원도 안 되는 주식이라도 앞으로 가치가 올라갈 선물로 청혼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남편은 내 입장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남들처럼 반지로 선물하면 편할 텐데' 라며 투덜댔다. 남편이 쉽게 결정을 못 하는 바람에 선물도 결국 내가 골랐다.


월세를 낳는 선물


내가 받은 결혼 선물은 '투자용 집'이다. 부동산 투자를 하면서 5천만 원에 판매하고 있는 다 쓰러져 가는 집을 발견했다. 이 집의 가능성을 가늠해본 후 좋은 투자라고 판단하고 가격을 협상해서 3천5백만 원으로 깎았다. 매수할 때 3천5백만 원 중 남편에게 결혼 선물로 2천만 원 정도를 받았다.


원래 함께 일하던 공사 담당 사업 파트너와 공동 명의로 사되, 그 집을 내가 사고 파트너가 고치는 조건 (수리비와 매수 비용이 비슷했다)으로 반반씩 지분을 나누었다. 다 고쳐진 집은 지금 1억 상당의 가치를 가지게 됐고 매달 백삼십만 원 정도의 수익을 낸다. 그중 반인 75만 원이 내 지분이다. 3천5백만 원을 투자해서 매년 세금과 이것저것을 떼고 나면 내 몫으로 500만 원 정도의 수익이 난다. 7년이면 집 값을 수익으로 뽑아낼 수 있고, 팔 때도 차액 수익을 낼 수 있다. 그중 남편이 준 선물의 지분은 그중 57%인 (2천만 원/3천5백만 원 = 57%) 2천8백만 원 정도의 가치에 매 년 285만 원 정도의 수익에 해당한다. 다이아몬드 반지도 볼 때마다 흐뭇하겠지만 대신 받은 매달 월세를 낳는 청혼 선물에 아주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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