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night Library
Midnight Library라는 소설의 주인공인 35세 노라는 어머니는 병으로,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돌아가시고 오빠는 함께 하던 밴드 활동을 그만둔 후 틀어져서 절연한 상태다. 노라는 청소년 때는 수영선수였고 작곡과 피아노 등 음악에도 재능이 있었고 대학에서는 철학을 전공했지만 모두 그만두고 지금은 생계를 위해 음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일자리를 잃는다. 한때는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 친구도 있었지만 지금은 혼자다. 전 남자 친구는 아직도 가끔 연락해서 너 때문에 알코올 중독이 되었다고 노라를 원망하고, 절연한 오빠도 노라가 밴드를 그만두어서 자신의 꿈이었던 음악을 못하게 됐다고 원망한다. 죄책감만 많고 즐거움도 희망도 없는 인생이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노라는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 시도 후 노라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환상의 도서관으로 인도된다. 그곳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도 있었던’ 수많은 다른 삶들을 체험해보게 된다. 평행 세계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의 몸에 들어가서 잠깐 동안 다른 ‘노라’의 삶을 살다가 그 삶에 실망하는 순간 다시 환상의 도서관으로 소환되어서 또 다른 삶이 있는 평행 세계로 간다.
그녀가 살 수도 있었던 삶은 무한하게 많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인데, 각 선택마다 다른 삶이 펼쳐져서 우리가 살 수 있는 삶은 무한하게 다양하다. 노라의 삶도 그렇다. 노라는 지금은 후회가 남는 선택들을 하나하나 되돌려보며 다른 선택을 했던 삶을 살아본다. 후회: 그 결혼을 했던 삶은 어땠을까? 한 삶에서는 예전에 약혼했던 남자와 결혼해서 남자가 꿈꿨던 대로 시골에서 술집을 운영하지만 꿈을 이뤘음에도 남자는 행복하지도 않고 결혼생활에 충실하지도 않다. 그와 결혼한 노라도 마찬가지로 행복하지 않다. 후회: 음악을 계속했다면 어땠을까? 오빠와 결성했던 록밴드를 계속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션이 되어있고 현생에서 동경하는 연예인과 연인 사이인 삶이 있다. 그런데 정작 오빠는 죽어있다. 그녀의 가방에는 항우울제가 들어 있다.
각각의 삶은 정말 다르고 노라의 모습도 서로 정말 다르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유전자는 같지만 지나온 세월에 따라 어떤 삶에서는 근육질에 건강한 상태고, 어떤 삶에서는 의자에서 일어나기도 힘이 들 만큼 건강이 상해 있다. 어떤 삶에서는 아름답고 어떤 삶에서는 그렇지 않고, 어떤 삶에서는 주목받고, 어떤 삶에서는 외롭다.
주변인들의 삶 또한 아주 다르다. 어떤 삶에서는 오빠와 사이가 좋고, 어떤 삶에서는 나쁘다. 어떤 삶에선 오빠가 죽었다. 어떤 삶에서는 돌아가진 아버지가 살아있고, 어떤 삶에서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다. 가족들 뿐만 아니라 그저 스쳐 지나간다고 여겼던 사람들도 노라의 선택에 따라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작은 인연이 서로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놀랍게도 아주 크다. 노라가 일주일에 한 번 피아노를 가르치는 소년은 그녀가 결혼해서 타지로 가는 바람에 그의 삶에 나타나지 않게 되자 범죄자가 된다. 현생에서 노라와 꽤 가까이 지내는 동네 할아버지는 노라가 삶에 나타나지 않자 절망적이고 외롭게 산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인 줄 알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는 그들에게 정말 중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반면,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해도 바뀌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그녀와 헤어져서 알코올 중독이 된 줄 알았던 전 남자 친구는 그녀와 결혼한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알코올 중독이었다. 지병이 있었던 노라의 고양이는 어떤 삶이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노라의 선택으로 인해 인류가 멸망했다거나 하는 평행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삶을 겪어본 결과, 무기력했던 노라의 삶에서 필요한 건 부나 명예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 ’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확신’이었던 것 같다. 삶은 단순히 가난, 외로움, 우울함에서 벗어나 부, 명예, 관심을 얻는다고 해서 ‘살 만한 삶’이 되는 게 아니다. 아름답고 부자이고 세계적인 록스타인 노라도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수영선수가 되어서 건강한 신체를 갖고 존경받았을 때도 행복하지 않았다. 노라는 남의 꿈이 아닌 온전히 자신이 선택하는 삶을 바라고 있었고 더불어 삶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랐다.
가장 좋았던 삶은 따뜻한 남편과 귀여운 딸이 있고 그녀 자신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철학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 소소한 삶이었다. 그 삶에서 깨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 삶을 동경한다. 그러나 노라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서 현생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좋았던 삶의 남편을 찾아가서 그 삶을 따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앞으로 자신이 선택해서 삶을 만들어 나갈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채로 소설은 끝이 난다.
노라의 여러 삶들을 보면서 나도 내 선택들을 돌아보았다. 예전 그 사람이랑 계속 만났다면 어땠을까? 예전에 그 일을 계속했다면 어땠을까? 평행 세계에서 다른 선택을 한 내 삶들은 어떤 모습일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지만 정작 그 의미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오히려 세상에 떠다니는 작은 일부로 함께 흘러가며 살아가고 있다고,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부분들과 불가항력으로 인한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 하고 싶은데 ~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특히 ‘부모님 때문에,’ ‘~로 태어나서,’라는 구실을 붙이며 인생의 주인이 되길 외면한 적이 많았다.
이 책을 읽고 우리 모두의 ‘현 상태’는 우리의 수많은 선택들로 만들어진 결과라는 걸 알았다. 지금의 내 몸과 건강은 그냥 갖고 태어나서 이런 게 아니라 조금 더 열심히 운동해서 근육을 더 붙일 수도 있었고, 조금 더 먹어서 살을 찌우거나 덜 먹어서 뺄 수도 수도 있었지만 딱 내가 선택한 만큼만 먹고 움직인 결과로 만들어진 몸과 건강이란 걸 알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사는 곳, 일상의 모든 순간들, 생김새까지도 모두 내 선택에 의해서 지금 상태가 된 것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마저도 하나의 선택이었단 걸 알았다.
지금 삶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은 바꾸기로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현재의 자신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도 없다. 현재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기로 선택하면 된다. 오늘은 남은 인생의 첫날이고 오늘의 자신은 어제의 자신과는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앞으로의 삶은 지금부터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