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대상화의 대상이 주체가 되어서 그걸 이용한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글이 될 것 같다.
3년 전 막 부동산 중개인 라이센스를 취득했을 때였다. 지인과 함께 들른 미드타운의 이든 갤러리 오프닝에서 한 70대 노신사를 만났다. 그는 내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고, 나는 본업은 엔지니어지만 얼마 전 부동산 중개인 자격증을 땄다고 말했다. 노인은 자신이 규모 있는 아파트의 건물주인데 내가 자신의 건물을 세놓는 걸 도와주지 않겠느냐고 물어봤다. 나는 너무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어 연락처를 교환하고 미팅을 잡았다.
미팅은 처음부터 좀 이상했다. 노인은 스포츠카를 타고 나를 데리러 왔고 내 옷차림을 칭찬했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내내 부동산 이야기는 하지 않고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부동산 이야기를 하자고 하자 내가 너무 ‘비즈니스나 돈 이야기만 한다’라고 핀잔을 주었다. 대화가 지속될수록 설마 70대 노인이 20대인 나를 여자로 보는 걸까 싶었는데 설마가 진짜였다. 결국 그는 스폰 제의를 했다. 딱히 성적인 관계를 원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자신의 ‘친구’가 되어 주면 내가 살 곳을 마련해 주고 연봉 2억을 줄 것이란 제안이었다. (딱히 성적인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건 아마 그의 나이 때문에 성기능이 떨어져서 인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나는 부동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온 것이고 직업과 벌이가 있어서 그의 돈이 필요 없으며 남자 친구도 있다고 거절했지만 그는 끈질겼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의 전화번호를 차단했다.
다양한 많은 다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살고 물질만능주의가 강한 뉴욕에서 젊은 여자가 나이 든 남자에게 스폰 제의를 받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며 나도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때만큼은 새로 시작하려는 일에 찾아온 기회인 줄 알고 큰 기대를 품고 나갔던 자리라 짓밟힌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지식을 쌓고 실력을 키워도 내게 기회를 줄 수 있는 그와 같은 사람에게 내 실력이나 지식은 보이지 않고 그저 육신만 보인다는 사실에 큰 모욕감과 좌절감을 느꼈다. 당시 내 남자 친구/지금의 남편은 너를 고깃덩어리로 보는 사람들도 너를 일적으로 존중할 수밖에 없을 만큼 실력을 키우라고 조언했다. 여성이기 때문에 힘들겠지만 자갈밭일지라도 더 잘해서 뛰어넘으라는 조언이었다. 내가 여성성을 이용하지 않을 거고,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전제로 들어가 있는 조언이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 이후로도 남성 중심의 부동산 업계에서 성희롱과 무시를 당하며 여성이기 때문에 크고 작은 불편함들이 많았지만 단 한 번도 여성성을 이점으로 이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일은 나로 하여금 ‘여성이 여성성을 이용하는 것이 나쁜가?’라는 질문을 하게 했다.
젊은 여자라는 사실은 난점일까 이점일까? 나는 중개인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 건물주에게 내 지능이나 실력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남자였다면 내 몸보다 사람 됨됨이나 실력으로 관심을 돌려서 함께 일할 기회를 만들 수 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내 겉모습 때문에 실력을 보이지 못했으니 내가 젊은 여자란 사실은 난점일 것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 내가 젊은 여자가 아니었다면 자격증을 따자마자 규모 있는 건물주와 중개를 논할 기회 자체를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만약 내게 온 기회를 마다하지 않고 그의 ‘친구’가 되어 그와 가끔 만나고 부동산 중개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웠다면 내가 젊은 여자라는 사실은 이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어떻게 이용하냐에 따라 난점도, 이점도 될 수 있다. 실제로 역사의 많은 비즈니스 우먼들이 전략적 결혼이나 연애, 혹은 스폰 관계를 통해 여성성을 자신의 성공에 활용했다. 그들은 여성성을 자신을 날게 해 줄 프로펠러로 이용했다. 일례로 가난했던 코코 샤넬은 부유한 남성들의 도움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 브랜드가 되어 있는 그 사업은 그녀가 여성성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여성, 특히 아름다운 젊은 여자들은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성적 대상화되는 경험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그 대상화의 주체가 되어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경우 그들을 보는 세상의 눈은 곱지 않다. 세상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면서도 당하는 당사자들은 자신의 여성성을 지키고, 감춰야 하며 여러 사람과 나누지 않는걸 미덕으로 여긴다. 특히 그들이 여성성을 이용해 돈을 벌거나 기회로 삼으려 하면 바로 비난의 손가락질을 한다.
얼마 전 세계적인 모델이며 인스타그램에 누드 사진을 자주 올리는 것으로 유명한 에밀리 라타코프스키가 자신의 몸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그에서 오는 권력을 주제로 책 <My Body>를 출간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대상화해서 돈을 버는 것이 해방이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모델로 일하는 동안 여러 부유한 남성들에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대가로 돈을 받았고 (예를 들어 미식축구 게임을 함께 시청하는 대가로 $25,000를 받았다고 한다.) 사람이 아닌 마네킨처럼 느낀 적도 많았지만 자신도 그들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그들을 상대로 승리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는 남성들에게 어필되는 성적 매력으로 부를 얻었지만 그 부와 부에서 오는 권력은 이제 남성들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이 되었다. 책이 나온 후 페미니스트를 포함한 대부분의 여론은 그녀를 비난하는 것 같지만 나는 여성이 성적 대상화의 대상에서 주체가 되는 게 해방의 한 형태라는데 어느 정도 동의한다. 물론 성적 대상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유토피아적이겠지만 성적 대상화는 인간의 기본 번식 본능에서 유래하며 변형될 수는 있어도 현실적으로 완전히 사라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피할 수 없어서 즐기는 것도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