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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준희 Apr 03. 2020

저축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던 이유

저축, 소득, 경제상황, 수학여행, 할인, 세일

들쭉날쭉한 경제상황


제 부모님은 풍족하면 풍족한 만큼, 부족해도 최대한 항상 경제적으로 제게 베풀어 주셨지만 수입이 일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립 중학교에 다녔지만 상황이 안 좋아져서 수학여행에 가지 못한 적도 있었고, 윈도 크랭크라고 불리는 수동 레버를 손으로 돌려서 내려야 하는 창문이 달린 아주 오래된 자동차를 타고 놀림받으며 등하교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다 상황이 좋아져서 몇 년 동안 넉넉한 용돈을 받았습니다. 수중에 있는 액수에 맞추어서 갖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사면서도 할인을 받으면 마치 알뜰하게 쇼핑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고, 평소 쓰는 액수보다 용돈이 넉넉해서 노트북 같은 것들을 살 때는 몇 달 기다려서 모아서 사는 것도 힘들지 않았고, 친구들에게도 잘 베풀고 놀러 나가서 맛있는걸 자주 사 먹었습니다. 당시에는 좋은 상황이 계속 지속될 줄 알았지만 대학 중간에 다시 힘든 시간이 찾아왔고 그때 저는 일도 할 수 없는 유학생 신분이었습니다.  


몇 년 동안 상황이 좋았던 만큼 더 많이 힘들어졌고 학교에 내야 하는 납부금도 밀리고 친구들을 만나러도 나갈 수 없었습니다. 쇼핑은 고사하고 1달러가 아쉬웠습니다. 누가 노트북을 1달러에 판다고 해도 돈이 없으면 못 살 수도 있다는 걸, 그리고 돈은 항상 있는 게 아니란 걸 몸으로 느끼면서 익숙해졌던 풍족한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공과금도 걱정할 만큼 1달러가 아쉬운 상황에 최근에 샀던 값나가고 잘 쓰지 않는 물건들이 눈에 띌 때마다 허탈하면서 비싼 물건들에 혐오감마저 들었습니다. 학교에 내야 하는 돈도 없을 줄 알았으면 저 물건들을 사는 대신 저축을 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너무 컸습니다. 돈이 너무 부족해서 느끼는 불편함에 비하면 물건들을 사서 느낀 기쁨은 너무나 작은 것이었습니다. 이때 중고거래도 알게 되었습니다. 구매자와 길목에서 만나서 보스 헤드폰을 150달러에 판 것이 첫 중고거래였는데 그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잘 쓰지 않는 물건은 중고로 팔곤 합니다.


이때 모든 생활을 재점검하면서 어떤 소비도 당연한 소비일 수는 없고 미래에 다른 곳에 쓸 수도 있는 돈과 교환하는 것이라고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무언갈 살 때마다 꼭 필요한 소비인지 신중하게 고민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지금 쓰는 소비 기준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https://brunch.co.kr/@sejooni/43) 그리고 강제적이긴 했지만 검소하게 사는 법을 익혔습니다. 영양가는 높고 가격은 싼 음식 고르는 법을 익혔고, 사야 하는 물건이 생각나도 꼭 필요한 막바지까지 사지 않고 (못하고) 기다렸고, 친구들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나가지 않다가 나중엔 솔직하게 경제적인 상황을 말하니 이해해 주어서 집에서 만났습니다. 사이가 멀어진 친구들도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오히려 더 가까워진 친구들이 더 많았습니다. 사람도, 물건도 덜어내고 꼭 필요한 걸 알아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런 새로운 생활 또한 2-3년이 지나니 익숙해졌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절실하게 돈을 벌고 싶어 졌습니다. 지금까지의 생활이 전부 무너지는 일이 없게 하려면 일단 지출을 줄이고, 일정한 소득을 벌고, 또 일자리를 잃을 경우를 대비해서 보호막 삼아 저축을 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돈을 벌려면 지적 자산을 키워야 하니 자동으로 공부도 더 열심히 하게 됐습니니다. 그리고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수업을 여러 개 때려 넣어서 조기 졸업했습니다.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그 몇 년 동안 크게 성장한것 같습니다. 시간과 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웠고 지금까지도 소득이 늘거나 줄어도 버는 것보다 훨씬 덜 쓰는 생활수준에 맞추게 되었기 때문에 힘들었던 시간을 값진 경험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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