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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도 들어주니 민원이다.

모든 걸 다 해줄 수는 없잖아요?

by Kifeel co

4년 만에 한국에 와서 느꼈던 점은 한국사람이 정말 친절하다는 것. 그렇지만 표정은 밝지 않다는것.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이 문장 앞뒤로 붙는다는 것.

그리고 나는 어디를 가던 '고맙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이 말을 자동반사처럼 사용하게 되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가니 일하시는 분들이 다들 마스크를 끼고 계셨다. 마스크의 용도가 비말 방지가 아니라 직원분들 얼굴을 가리고 표정을 들키지 않겠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 가니

'잦은 민원으로 인해 직원을 보호하고자 모든 대화내용은 녹음 중입니다'라고 되어 있었다.

물론 개발도상국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는 것은 조금 안 맞을 수도 있겠지만,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처럼 민원을 들어주고 바꿔주는 나라는 드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신문고, 인권센터, 그 외 수많은 민원창구들...


인도네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에서 1년에 약 4천만 원의 학비를 내고 다니는 학교에 학교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면 학교는 엄마의 이야기는 들어주지만, 그것을 학교에 즉각 방영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정도 학교에 오래 다닌 엄마들은 학교에 어떤 의견을 내는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는다. 어차피 안될 것을 아니까. 엄마들끼리 성토대회 하듯 쏟아 내지만 학교에 직접 다 일일이 말하지 않는다. 어차피 학교는 변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리고 5성급 호텔이고 호텔에 아쉬움에 대해 이야기해도 수정해 주는 부분이 크지 않다. 들어는 주지만 그 부분이 변하는 부분은 크지 않았다.


갑질에 대한 사건들이 이슈가 되면서 을을 위한 장치를 마련한 것이 민원을 들어주고 그런 것들을 시정해 주는 장치가 많아진 것인데 반대로 그 민원을 들어주는 직원외에도 기타 사업장에 더 많은 을을 만들어준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사람들은 집도 아닌 공공장소이다 보니 불편이 있을 수도 있고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작은 것들도 가만히 참지 못하고 한번 말하게 된다.


아이들과 세탁소에 가서 현금으로 결제하는데 세탁소 사장님이

"죄송해요. 만원 자리를 드려야 하는데 5천 원짜리 두장이에요. 죄송합니다."

잔돈을 덜 주시는 것도 아닌데, 5천 원 두 장을 주시는 것도 죄송할 것이 없는데...

거주하게 될 아파트를 작게 철거하고 인테리어를 하고 들어오는데 관리소 직원분이 소음이 크게 나는 날과 없는 날을 정확히 해달라고 하셨다. 그 이유가

'소음이 클 거라 했는데 없어도 민원이 들어와요'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들어주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부분이 조금은 너무 과하지 않나 싶다.


최근 소셜미디어를 하다가 한 어린이집 선생님이 쓰신 글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아이 마음 읽어달라, 부모님 마음도 읽어달라 하시는데 제가 모든 걸 다 읽은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마음을 잘 읽어 준 아이는 커서 날 다른 사람의 마음은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아이로 컸나요?라는 질문에 그 선생님은 '아니요, 그럴 리가요, 본인만 아는 아이로 자랐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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