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박구리는 조용한 풍경 속에서도
자기 소리를 절대 감추지 않는다.
다른 새들이 산책하듯 울 때
혼자서 찢어지듯 큰 소리를 내곤 한다.
처음에 난 직박구리 울음을 구별하지 못할 때는
그 목소리가 신기하기만 했다.
서울에만 있다가 경기 인근으로 이사하고
알람이 아닌 이 새소리에 깨었을 때가
새에 대한 관심이 처음 생긴 순간이었다.
새에 관련된 도감들,
새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새 관련 유뷰브와 그 유튜버에게 들은
새소리 인식 어플을 깔고서야
주변에 많은 종류의 새들이 있음을,
그제야 알게 된 새들이
아주 매력적이고 슈퍼 파워를 가진
존재들임을 느끼게 되었다.
벚꽃이 필 때면 직박구리가 잘 익은 꽃을 골라 따기도 하고
잘 익은 감을 거의 거꾸로 매달려서도 따먹고
까치나 까마귀가 주변에 날라 오면 아주 호전적으로 쫓아내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 소리를 시끄럽다 하고
누군가는 그 소리를 반갑다 한다.
직박구리는 그 반응에 관심 없어 보인다.
스스로 살아 있다는 감각을
다양한 자기 목소리로 확인할 뿐이다.
나는 요즘
말을 아끼는 편이지만,
아끼는 이유는 단순하다.
말을 꺼내면 책임이 남고,
책임이 남으면 감정의 결이 드러난다.
하지만 직박구리를 보고 있으면
생각이 약간 달라진다.
말을 줄이는 것과
목소리를 감추는 것은
조금 다른 일이라는 걸 느낀다.
직박구리는 말을 잘하거나
의미 있게 울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지금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소리로 남긴다.
그게 필요할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들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나는 요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소리가 난다.
그 소리는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지만
없어지지는 않는다.
직박구리를 보며 생각한다.
나만의 소음이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시끄럽더라도
나를 흔들지 않는 소리라면.
직박구리는 오늘도 울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조금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대답했다.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조용하지만 분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