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갈매기는 멀리서 보면 멋있다.
날개는 크고, 비행은 안정적이고,
바다 위를 가르는 모습에는 힘이 있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그 새는 꽤 공격적이다.
먹이를 두고는 망설이지 않고,
자기 영역에 들어오면
소리부터 높인다.
그 공격성은
살기 위한 본능이면서
동시에 욕망이 커졌다는 신호다.
나름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 안에도 비슷한 기운이 생겼다는 걸 느낀다.
원하는 것이 분명해질수록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예민해졌다.
조급해졌고,
작은 방해에도 짜증이 먼저 올라왔다.
예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일에
괜히 반응하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일에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걸 알아차렸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이게 내가 바라던 모습이었나?”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욕망이 생겼다는 건
이미 한 발 나아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욕망을 다루는 법은
아직 배우는 중일뿐이다.
괭이갈매기의 공격성은
아무 데서나 튀어나오지 않는다.
배고플 때,
영역이 침범당했을 때,
지킬 것이 분명할 때
그는 공격한다.
나는 내 공격성이
언제 튀어나오는지
조금씩 보게 되었다.
무시당한다고 느낄 때
내 선택이 흔들릴까 불안할 때
내가 원하는 걸 빼앗길 것 같을 때
그 순간마다
공격성은
나를 보호하는 얼굴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 얼굴이 오래 머물면
관계도, 나 자신도
조금씩 상처 입었다.
괭이갈매기는
항상 날카롭지 않다.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날 때는
놀라울 만큼 고요하다.
공격성은 필요할 때만 쓰고
평소에는 접어둔다.
욕망을 없애지 않겠다고.
욕망이 생긴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대신
공격성을 바로 쓰지 않겠다고.
욕망은 나를 앞으로 보내지만,
공격성은 나를 고립시킨다.
나는 요즘
불편해지는 순간
한 박자 늦춘다.
바로 말하지 않고,
바로 반응하지 않고,
이 감정이 욕망인지,
두려움인지를 한 번 더 묻는다.
괭이갈매기는
필요하면 다시 날아오르지만
항상 싸우지는 않는다.
바다에는
싸우지 않아도 지킬 수 있는
높이가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나도 이제
내 욕망의 크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 욕망이
사람을 할퀴지 않게
조절하는 법을 연습한다.
욕망이 커질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 건
나의 말과 태도다.
괭이갈매기는
해 질 무렵
소리를 낮춘다.
그 순간의 바다는
조금 덜 거칠다.
오늘 나는
그 장면을 오래 기억한다.
욕망을 가진 채로도
평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