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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lah Sep 08. 2016

Shaking Lotus, Wind, and You

흔들리는 연꽃, 바람, 그대

흔들리는 연꽃, 바람, 그대. 고양, 호수공원


 

 

밤이 깊어가고 있다.

갑작스러운 전화로 오늘 오후 부산으로 내려와,

지금 나는 6월의 매미소리가 배경음악처럼 흘러 들어오는 창문 아래,

어릴 적부터 있던 낡은 소파에 앉아

불쌍한 내 손등의 상처를 바라보고 있다.


상처가 좀처럼 아물지를 않는다.

왜, 어떻게,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생겨난 상처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 손등에 불그스름한 보기 싫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끈질기다.

조금 색이 옅어지는 것 같다가도 제 행동을 취소하고 만다.

 

나에게는 두 할머니가 있다.

두 분 모두 병을 가지고 계시고, 그들의 병은 점점 커지고만 있다.

같이 밥을 먹고 한 두어 말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알게 되는 사실은

그들은 아픔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몰랐다. 고통에 대해, 오늘 식탁에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과 내일은 그러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길 수 있을 법한 결과 말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다 알 수 없음을 인정한다.

'몰랐다'가 아닌 '아직도 모른다'가 더 정확할 것이다.

 

오늘 검은 정장과 흰 와이셔츠를 입은 조금 늙어 보이는 청년이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신상에 대해 물어보다가 부모의 인연도 필연인 것이고

나와 그 사람과의 횡단보도에서의 만남 또한 필연이라 했다.

하지만 내가 뒤로 몸을 빼며

신호등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초록불로 바뀌기만을 기다리곤 별 대꾸를 하지 않자,

그가 말하는 필연을 왜 거부하냐며 눈에 힘을 주며 덧붙였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내 선택이라는 말 대신,

"수고하세요"하며 굳은 표정으로 길을 속히 건넜다.

골목길을 걸어가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분식점을 지나, 교회를 지나, 세탁소를 지나서

역 근처에 도달할 때에도 여전히 나는 그의 말들을 불편하게 되뇌었다.

 

내일 할머니를 뵈러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한다.

만나야 할 사람만을 만나고 싶다.

물론 그 낯선 청년의 질문과 접근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아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내일 할머니와 한 두어 마디 하게 된다고 할지언정 제대로 해야지.

어쩌면 그 청년의 집요함처럼, 내 손등의 없어지지 않는

투지를 보이는 상처처럼,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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