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에 쉽사리 통제되지 않는다. 이때 어른들은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말로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활용한다. 앞에서 말했던 것과 같은 사례로 가령 '너 자꾸 이런 행동하면 할머니께서 이놈 하신다' 또는 '엄마 말을 잘 들으면 엄마 기분이 좋아 지실거야', '너희가 말을 잘 들으면 마트에 가서 장난감 사줄게, 말 안 들으면 장난감 안 사줄거야' 등등 부모가 활용할 수 있고 아이의 관심을 끌만한 것을 내세워 아이를 통제하려는 상황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이런 말 자체가 아이들에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만약 투병 중인 부모가 있다면 그의 어린 자녀에게 이런 말은 조심해야 한다. '너희가 이렇게 말을 듣지 않으니까 엄마가 아프신 거야' 라고 하거나 '너희가 엄마 말을 듣지 않으면 엄마가 더 아프실 거야' 라는 식의 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또 '너희가 말 잘 들으면 엄마가 빨리 나으실 거야' 등의 말도 금물이다.
특히 취학 전 아동들은 연관논리와 자기 중심사고로 부모가 아픈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게 된다. 연관논리란 아이들은 우연히 발생하는 일은 없으며 결과에 대한 원인이 있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자기 중심사고로 자신과 연결시키는 경우가 많다. 행여 그런 얘기를 들은 아이의 부모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아이는 부모 죽음의 원인이 자신의 잘못으로 발생한 것이라 여겨 평생 돌이킬 수 없는 심적 부담을 아이에게 짊어지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모가 아플때 자녀교육법》이라는 책을 집필한 파울라 K. 라우치 M.D. 저자는 아이들의 연관논리와 자기 중심사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취학 전 아동들은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이유가 있고 결코 우연이나 행운에 의해 발생하지 않는다(연관 논리)고 믿으며 발생 이유는 대개 자신들의 관점에서 발생해야 한다(자기 중심사고). 그 결과 여러분이 심각한 병으로 인해 진료를 받을 때 여러분의 어린 아이는 자신이 병의 원인이라고 믿을 가능성이 있다”
-《부모가 아플때 자녀교육법》, 파울라 K. 라우치 M.D. 저 김의정 역 조윤커뮤니케이션 2008.11.10., 49쪽
이 글을 처음 접했을 때 아내와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을 읽은 시기가 2017년 뇌종양 2차 재발로 항암치료를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우리 아이들 나이는 4살, 6살이었다. 만약 엄마가 겪는 고통이 아이들 자신 때문이라 여긴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부모는 아이에게 상황을 잘 설명해야 한다. 병은 왜 발생하는 것인지, 아이들과의 연관성은 없다는 것도 잘 전달해야 한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어느 날이었다. 큰 아이가 물어본다.
“아빠, 엄마는 왜 아프신 거야? 우리가 말 안 들어서 그런 거야?”
솔직히 이 말을 듣고 무척 놀랐다. 왠지 누군가에게 무슨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그래서 설명해 주었다. 뇌종양은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아픈 사람은 잘못한 행동에 대한 대가로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은 그냥 아픈 것이라고. 너희가 생활하다보면 열나고 감기에 걸릴 때도 있듯이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지 너희들 때문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어른들이 조금만 생각하면 아이가 성장하는 데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아이에게 상황에 맞는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 간에도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듯 어린아이들에게도 말을 가려야 한다. 우리가 던진 작은 돌맹이가 아이에게는 바위처럼 느껴질 수 있음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