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 어른들은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과연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은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죽음은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영원한 이별이라 봐야 할까? 한 사례를 보자. 한국전쟁이후 수많은 사람이 가족과 헤어지는 고통을 겪었다. 죽은 줄 알았던 가족을 수 십 년이 지나 이산가족 상복 행사에서 다시 재회하는 장면이 TV에 생중계 되는 일도 있었다. 가족이 죽은 줄 알고 가슴에 묻고 살았던 30년 세월, 그에게 지난 30년간 가족은 살아있었다 말할 수 있을까? 그가 가족이 사망했다고 여기고 살았다면 적어도 그에게는 산 것이 아닐 수 있다.
또 무전여행을 떠난 아들이 버스 전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일 것이다. 그 소식에 한참을 비통해 하고 있는데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사망자 명단 오류로 잘못 통보된 사망소식이란 전화를 받았다. 아마도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아들은 그런 연유도 모른 채 전국을 여행하고 있었다. 아무 일 없이 여행을 즐기는 아들과는 무관하게 부모는 아들을 저 세상으로 보냈다 살아 돌아온 경험을 한 것이다.
과연 우리는 사랑하는 이가 죽어서 슬퍼하는 것일까? 우리가 죽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슬픈 것일까? 만약 우리의 부모님이 오늘 오전에 돌아가셨다 해도 그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 우리는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 설령 지금 이 순간 죽음이 갈라놓았더라도 말이다. 우리 어른도 이렇게 죽음을 명확하게 규정짓기 힘들다. 개인적으로 죽음은 인식의 차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슬픔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죽음 자체로 우리가 슬픔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우리를 슬프고 힘들게 한다.
이렇게 어른들도 명확하게 정의하기 힘든 죽음을 아이에게 이해시키려 들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아이에게 심어주는 꼴이다. 엄마를 떠나보낸 아이라면 돌아가신 엄마가 항상 날 사랑하고 계시고 지켜주신다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며 슬퍼한다면 아이와 함께 둘러 앉아 엄마의 생전 모습을 추억하며 좋았던 기억을 하나씩 꺼내 보자. 함께 기쁘고 즐거웠던 시간을 추억하면 아이들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굳이 아이들에게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니 부모님을 떠올릴 때마다 슬퍼해야 한다는 공식을 인식시키지 말자.
(이미지출처: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5719868&memberNo=12161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