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준혁 Nov 17. 2019

설거지 총량 보존의 법칙

아이 둘을 혼자 양육하다보니 우리 집 아침은 언제나 분주하다.

마치 TV예능 프로그램 ‘출발, 드림팀’을 연상시킨다. 연예인이 출발선 뒤에서 비장한 눈빛으로 뛰쳐나갈 준비를 하듯, 아침 알람이 울리면 나의 하루도 그렇게 시작된다. 아이들을 깨우고, 주방으로 향해 가스레인지에 국을 데우고, 아침을 준비하며 저녁에 설거지 해둔 식판을 아이 가방에 챙겨 넣고, 다시 방으로 뛰어가 아이들을 깨운다. 아이들이 한 번에 일어날 리가 없다. 이때 중요한 규칙은 아이들도 나도 기분 나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난을 치듯, 게임을 하듯, 혹은 두 아이가 시합하는 상황을 만들어 욕실로 향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아이들도 하루를 좋지 않게 출발할 수 있다.     


아이들을 욕실로 보내고 나면 식탁에 밥을 준비하는데 이때 변수가 하나 있다. 바로 설거지. 살림을 사는 사람이라면 공감을 할 것이다. 어제 저녁에 설거지를 해 놓지 않으면 아침에 설거지가 그대로 쌓여 있다. 전날 밤에 아이들 재우고 설거지해야지 하며 깜빡 잠들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아침을 준비했는데 밥과 반찬을 담을 그릇과 수저가 설거지통에 들어있으면 난감한 상황이다. 아이들은 세수하고 밥 달라고 밥상에 앉아 있는데 말이다. 이런 상황은 생각만 해도 우울해진다.      


설거지는 참 정직하다. 밥을 간단히 먹으면 양이 적다. 맛있는 요리와 함께 푸짐하게 먹은 날은 어김없이 설거지거리가 넘쳐난다. 설거지에도 분명 법칙이 존재함을 깨달았다. 질량보존의 법칙이 화학반응 전후 반응물질의 전체 질량과 생성물질의 전체 질량이 같다는 법칙이라면 설거지에는 ‘설거지 총량 보존의 법칙’이 있다. 이 법칙은 설거지의 총량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법칙이다. (설거지는 총량은 굳이 보존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설거지를 전날 하지 않으면 다음날 아침에 그대로 쌓여 있고, 전날 반만 하고 자면 그 다음날 아침에 어김없이 반이 쌓여 있고, 전날 부지런히 몽땅 다 해 놓으면 그 다음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행여 쌓아두고 시간을 보내다간 싱크대에서 악취라는 신호를 받는다. 그땐 당장 와서 설거지 하라는 강력한 신호다. (만약 악취를 견디는 만큼 설거지 양이 줄어든다면 한번 도전해볼 생각도 있다;) 설거지는 노력한 만큼 결과를 부여하는 공정한 게임이다.           


집안일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일, 빨래개기, 욕실청소, 집안정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반드시 오늘 해야 할 일, 설거지, 알림장 체크, 준비물 챙기기, 아이 감기약 먹이기 등이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다 보면 집안이 난장판 되는 부작용이 있지만 내 인내력으로 참아낼 만하다.(지금도 잘 참아내며 글을 쓰고 있다;) 그것은 날 잡아 휴일 반납하면 그나마 해결된다. 물론 아이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하지만 후자는 지금 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어 나의 몸 컨디션과는 무관하게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다. 특히 설거지는 더 그렇다.          


아내가 건강했을 때는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은데 아내가 떠난 지금은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그저 일부일 뿐이다. 아이들 챙기며, 집안일하며, 회사에서 일하며 이 중 하나라도 미션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큰 벌칙이 따른다. 아내가 있을 때는 그나마 설거지하면 칭찬이라도 받았는데 지금은 하면 당연한 것, 안 하면 아이들 눈치를 봐야하는 신세다.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궁금한 것이 있다.  

         

“집안일은 왜 해도 티가 안 날까? 그리고 정리하기 이전으로 곧 돌아가는 걸까?”     


세계 3대 미스터리에 들어갈 만한 일이다.     





이전 16화 힘들 땐 흐름에 몸을 맡기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