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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혁 Oct 31. 2020

보호자는 자신을 지키며 간병해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 중 아픈사람이 있다면 아마 나처럼 자연스레 간병인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떠날 것에 기약 없는 시한부 인생이라면 지칠 때가 분명 온다.     


간병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지치는 것에는 예외가 없더라.     


언젠가 프로파일러가 출연한 오디오방송을 들은 적이 있다. 기억에 남는 건 가족 간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환자가 희망의 끈을 놓을 때 간병을 하던 가족마저도 쉽게 끈을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 때문 일까.      


이 말에 공감된 적도 있었다. 그런 생각까지의 간병기간은 평균 약 6년 정도였다.     


오죽하면 유교사상이 몸에 밴 우리 조상들도 ‘긴 병에 효자없다’는 속담이 생겼을까. 간병기간이 길어지면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찾아온다. 간병기간에 오롯이 간병에만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경제활동을 하며 아픈 가족을 돌보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근근히 버티며 간병하는 등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거기에 함께 어려움을 나눌 이웃이나 친지도 없다면 그 어려움은 배가 된다.     


아내의 뇌종양 세포가 기세을 올리며 더이상 손을 쓰기 힘든 곳으로 우리를 끌고 가던 시기, 항암치료와 고통에 지친 아내가 울며 내게 한 말이었는데      


“여보 나 언제 죽어. 왜 안죽어.. 나 너무 힘들어..이제 그냥 죽었으면 좋겠어.. ”     


아내의 고통섞인 말이 생각의 끝에 머물다 다시금 또 생채기를 내고 사라진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말을 내뱉었을까.      


사랑하는 아내가 고통에 발버둥치는 그 순간, 보호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조용히 안고 함께 울어주는 것밖에 없었다. 내가 참 무능력해 보이고 대신 아파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것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가슴 아픈 현실이었다.      


프로파일러가 말한 환자가 희망의 끈을 놓는 그 시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호자도 정신이 피폐해져 있는 상태라면 정상적인 판단이 어려울 수 있겠다 여겨진다.     


환자는 치료에 집중해야 하지만 보호자는 환자 병간호와 함께 자신도 함께 지켜야 한다. 자신의 정신이 피폐해져 있다면 환기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스스로 찾아내야 하고, 몸이 약해졌음을 느낀다면 몸에 좋은 음식을 먹거나 운동을 해서 자신의 컨디션을 유지해 가며 간병을 이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지치게 되고 치료에 고통받는 가족의 한마디 말에 자신까지 나약해져 흔들릴 수 있다. 만약 지금의 간병이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면 보호자 자신부터 살아야 남도 지킬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것이 함께 살 수 있는 길이다. 가족을 살린다는 명분하에 자신도 돌보지 못한다면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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