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준혁 Nov 13. 2019

납골당에 있을까

나의 아내는 화성시추모공원에 안치되어 있다. 근처를 지날 때마다 눈길이 가고 바라보게 된다. 사실 나는 아내가 납골당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확인할 수 없지만 영혼이 없다면 사라졌을 것이고 통상 우리가 믿는 대로 영혼이 있다면 어딘가로 자유롭게 떠났을 것이다. 임형주 노래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는 세월호에서 사고를 당한 단원고 아이들을 추모하며 만든 곡이다. 노래 가사에 "나는 그곳에 있지 않아요. 자유롭게 날고 있죠. 더 이상 울지 말아요" 라는 가사가 있다.        

   

사람들은 영혼을 부르짖고 천국과 지옥을 말하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천국과 지옥은 믿음의 영역이다. 확인할 길이 없으니 있다고 믿으면 있는 것이고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과 같다. 죽음이후에 대해서는 어떤 누구도 죽어 본 적 없기에 무슨 말을 하든 입증하지 못하는 말들이다.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의 경험담조차 그것은 하나의 주장일뿐 죽고 난 다음 어떻게 될지 산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이런 이유로 남은 사람들의 상상력이 먼저 떠난 이들의 사후세계를 만들어 낸다. 어떻게 믿든 개인의 자유이고 추정이다. 만약 떠난 이가 아무것도 남지 않고 그저 소멸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러면 산 사람들의 마음이 좀 편해질까? 반대로 천국에 갔다고 생각하면? 어떤 생각을 하던 먼저 떠난 이와 상관없는 우리 생각과 믿음의 영역이다. 그래서 이곳보다 자유롭고 편안한 곳으로 떠났다고 믿으면 된다. 내가 믿는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에서 말하는 대로 믿으면 되고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있으면 된다.           


적어도 우리가 인식하는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정확한 것이 없다. 만약 죽음 이후의 세계가 정해져 있다면 종교가 여러 개일 이유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편안한 곳에서 쉬고 있다’, ‘그가 원했던 생전에 못다 이룬 삶을 찾아 훨훨 떠났다’라고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이 편해진다. ‘죽어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했을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떠난 이와는 무관하게 남은 이들의 마음만 불편해지기 때문에 굳이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납골당 그 작은 항아리에 영혼이 갇혀 있다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그렇게 믿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과거에는 매장을 많이 했지만 최근에는 화장을 많이 하기 때문에 납골당에 안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망했다면 납골당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워 졌고 더 아름다운 삶을 찾아 떠났을 거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이 모두가 우리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납골당을 보며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마음먹기에 따라 납골당에 있을 수도 좋은 곳으로 떠났을 수도 있다.

 


(이미지출처: https://artre.net/artwork/39554/)

이전 07화 죽음을 받아들이라 강요하지 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